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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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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07:16:35, 조회 : 1,25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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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2038452369_dd1773b5_BECFB5B5.jpg (66kb) 다운 :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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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시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일체개고
오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一切皆苦 吾當安之)’라고 사자후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입니다.
즉 부처가 되어서 고해(苦海)를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구제하기 위해 오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이 오신 뜻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는 가운데 설하신 세 가지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흔히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고 하는데,
요샛말로 하면 일종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염화미소(拈華微笑)’입니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 계실 때, 불현듯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셨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대중들이 영문을 몰라 의아해 하는데,
오직 가섭 존자만이 지긋이 미소를 지어보였다는 일화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아마 ‘자유’를 말씀하신 게 아닌가 합니다.
내가 찻잔을 드는 것이나 부처님께서 꽃을 드는 것은 모두 자유입니다.
또한 가섭이 웃는 것도 자유입니다.
곧 세상 모든 존재, 특히 생명은 절대자유로서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준동함령 개유불성(蠢動含靈 皆有佛性)].
자유(自由)라는 말은 이 세상 모든 일이 되고 안 되고는 모두
자기한테 달렸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주적이고 자조적이고 자립적인 정신을 가졌을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나다’라는
마음자세로, 남에게 의지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 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절대적인 힘을 길러야지만 우리도 부처님처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부처님께서 죽림정사 다자탑 앞에서 설법하실 때 있었던 일입니다.
가득 찬 대중들 때문에 멀리 전법을 나갔다가 늦게 돌아온 가섭 존자는
법회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넌지시 손짓을 해서
가섭 존자를 당신 옆에 나란히 앉혔다는 일화입니다.
이를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 分半座)’라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하늘과 땅 같은 것이어서,
부처님의 이런 행동은 굉장한 파격이었습니다.
이는 부처님께 항상 말씀하신 평등을 몸소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듯 시대를 앞서가는 지혜를 가졌던 분이 바로 부처님이셨습니다.
세 번째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의 일화로 ‘곽시쌍부(槨示雙趺)’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 제자들은 부처님 육신을 곽에 모셨습니다.
그때 가섭 존자가 늦게 도착해 곽을 세 바퀴 돌고 세 번 절을 하니,
곽의 뚜껑이 열리며 부처님 두 발이 밖으로 쓰윽 나왔습니다.
이는 곧 생사일여(生死一如), 죽고 사는 게 똑같다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의 경지에 이르러 살고 죽는 문제를 뛰어넘은
최고의 행복을 얻으신 것입니다.
하루하루 이 몸뚱이 하나 유지하려고 아등바등하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얼마든지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해 나간다면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과 같이 열반적정에 든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말 그대로 평화롭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류의 3대 목표는 자유, 평등, 평화입니다.
삼처전심은 현대적 의미로 살펴볼 때, 부처님께서 인류의 목표를 보여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얼굴을 만든다
평화라고 하는 원리는 알고 보면, ‘평화=자유+평등’입니다.
등식으로 말할 때는 간단하게 표현되지만, 실제 평화는 화합을 통해 이뤄집니다.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합심(合心)을 잘해야 합니다.
아무리 손과 발을 묶어놓고 강요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一切唯心造)’는 말처럼,
함께하는 마음만 있다면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합심을 하려면 심리상태가 좋아야 합니다. 남이 잘되면 같이 웃으며 기뻐하고,
힘들면 같이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또 전체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봄으로써 모든 것을 이해할 줄 아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해를 잘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해탈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빠져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해탈을 통해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는데,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또 탈속을 해야 합니다.
탈속이란 속물근성을 버리는 것입니다. 속물근성이란 다른 말로 물욕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탐욕이 되고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에,
과욕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있습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심상이
그대로 관상으로 묻어난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탐욕이 많은 사람은 항상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기 때문에 인상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늘 웃고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의 얼굴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우리 인상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어려서는 가난하고 빈약했지만, 출가를 해 중노릇을 50년 정도
하고 보니 얼굴이 많이 변했습니다.
남을 보살필 줄 아는, 보살의 삶
사람들은 업에 따라 산다고 하여 자신에게 꼭 맞는 업만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업이라고 하는 게 참 묘해서, 서로 상충돼 보이는 것이
잘 맞는 수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남자와 여자는
신체구조 상으로 정반대지만, 서로 잘 맞지 않습니까.
세상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양이 존재하는 것은 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선과 악은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본래부터
있거나 어느 한쪽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세상의 원리를 알고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를 길러야 하겠습니다.
탐욕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은 의지작용입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야
탐욕을 버리고, 본능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탐진치 삼독을 버리면 욕심이 사라집니다. 욕심이 없어지니 물욕도 가라앉고,
물욕이 없으니 속물근성이 빠져서 탈속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곧 해탈하는 것입니다. 해탈을 하면 이해가 잘되고,
이해를 잘하니 합심이 잘 돼서 절로 화합이 이루어져 가정이나
사회가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중생심을 불심으로 바꿔 나가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지성이 추구하는 것은 진리(眞)요,
의지가 추구하는 것은 선(善)이며, 정이 추구하는 것은 미(美)라고 합니다.
진선미는 인간의 3대 목표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진실하고 선량하고
아름다워지길 희망하며, 이런 사람을 우리는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보살이란 말 그대로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보살은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힘을 갖고, 큰 사랑으로 용서하고 베풉니다. 오늘 이후, 내 것만이 아닌 주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까지 보살필 줄 아는 진짜 보살의 삶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암도 스님 : 1955년 장성 백양사로 출가해 1964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72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조계종 상임포교사,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조계종 포교원장, 조계종 교육원장, 백양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마하무량사 회주로 주석하고 있다.
월간불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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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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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보살님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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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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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련화 보살림 덕분에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띄울수 있는 기분좋은 공일이 될것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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