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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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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경은 어떤 경전인가?/ 중생세간, 기세간, 지정각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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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5 00:23:20, 조회 : 1,49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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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은 대승경전 가운데 대표적인 경전이다. 시공을 초월해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의 세계를 설하는 방대한 양의 경전인 것이다. 그런데 여타의 대승경전과는 달리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한 내용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음력 12월 8일 깨달음 얻으셨다. 그 이전까지는 부처님께서도 우리 중생과 마찬가지로 미(迷)한 세계. 즉 깨닫지 못한 세계에 계셨다.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그 내용을 직접 설하신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근기의 정도가 같은 상수(上首)보살들이 '내가 부처님의 깨달은 내용을 보니까 이러이러 하더라'라고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화엄경의 처음에 나오는 세주묘엄품에 잘 나타난다. "세상에는 임금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라에는 나라일을 다스리는 인왕(人王)이 있고, 귀신에는 귀왕(鬼王), 나무에는 목왕(木王)이 있다"고 했다. 이 모든 세상의 임금을 세상의 주인이라고 해서 세주(世主)라고 한 것이다.
화엄경의 내용은 세상의 주인들이 부처님의 깨달은 모습을 사진을 찍듯이 찍어 놓은 것이다. 세주묘엄품에서는 이것을 "이 세상의 모든 세주들이 제각기 모든 법문을 깨달아 알며. 제각기 여래의 신통한 경계에 들어가며, 제각기 여래의 힘과 경계에 들어가며, 제각기 여래의 해탈경계에 들어갔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해탈의 경계, 즉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와 같이 미(迷)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은 한 시간 뒤의 일을 알 수가 없다. 또 지나간 일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만약 눈을 가린다면 세사으이 만물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세계에서는 이 모든것이 한꺼번에 보인다. 우리 중생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차례로 나오는데, 깨달은 세계의 부처님은 이것이 도장을 찍은 듯이 한꺼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열린 세계를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 한다.
해인삼매란, 향수해라는 바다가 어찌나 맑던지 세상의 모든 사물이 여기에 한꺼번에 비친다고 하는데, 이 바다에 모든 사물이 도장을 찍은 것과 같이 한꺼번에 비치는 것을 깨친 세계의 경지에 비유한 말이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게 되면 누구에게나 해인삼매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한꺼번에 보이는 세간을 불교에서는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것은 중생세간(衆生世間), 기세간(器世間),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이다.
2. 해인삼매에서 보이는 세간
1) 중생세간
중생세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말한다. 중생세간의 중생은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을 의미한다.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이 생명의 종류를 아홉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유색신(有色身)이다. 이것은 육신을 가진 생명이다. 불교에서는 육신을 빛 색(色)자로 나타내고 있다. 인간이나 동물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무색신(無色身)이다. 육신이 없는 생명이다. 영혼이나 귀신이 이에 해당하나 우리의 사고로써는 밑기 어려운 생명이다. 이 생명 역시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셋째는 생각이 있는 생명, 유상신(有想身) 이다. 우리가 몸을 바늘로 찌르면 따끔하고, 불에 대면 뜨거운 것을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바로 이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각을 느끼는 생명을 유상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넷째는 무상신(無想身)인데, 우리는 생각이 있는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생각이 없는 생명을 쉽기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몸에도 그런 곳이 있다. 나무나 풀은 몸에 상처를 내도 모르듯이, 우리 몸의 손톱, 발톱, 머리카락은 잘라내도아프지가 않다 이와 같이 감각은 있으되 생각이 없는 생명을 무상신이라고 한다.
다섯째로는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그런 생명을 가리키는 말로 비상비비상신(非想非非想身)이 있다.
이러한 다섯 가지 종류의 생명에다가 태어나는 과정에 따라 분류한 네 가지 생명이 더 있다. 즉 우리처럼 태(胎)로 태어나는 생명, 또 새나 물고기처럼 알로 태어나는 생명, 습기로 태어나는 생명, 화생(化生)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화생에 대한 예를 들면 우리가 극히 악한 일을 하든지 극히 착한 일을 하든지 하면 아홉달동안 부모의 태에 있다 태어나지 않고, 전깃불이 켜지듯이 단번에 태어나는 생명을 말한다.
금강경에서는 이러한 아홉가지의 생명을 구류생명(九類生命)이라고 한다. 이러한 아홉가지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각기 삶을 살고 있는데 야부송에 보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구류동거일법계(구류동거일법계)
자라장리산진주(자라장리산진주)
이것은 아홉 가지 종류의 중생이 모두 다 한 법계(法界)에 살고 있는데, 마치 붉은 장막 가운데 진주를 흩어 놓은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중생세간에는 이렇게 많은 생명이 살고 있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생명은 유상신(有想身), 유색신(有色身)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육신을 가진 생명만 해도 이 땅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웰레스(Wallace 1823~1913)의 통계에 의하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명의 가짓수는 육지, 하늘, 바다를 포함하여 60만가지나 된다고 한다. 인간도 그 60만 가지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 숫자는 50억 이상이다. 60만분의 1인 인간의 숫자가 이렇게 많으니 나머지 생명의 숫자는 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불교에서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숫자의 생명을 한데 묶어서 무리 중(衆)자, 날 생(生)자를 써서 중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중생세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중생들이 생명을 가지고 살지만 그 누구도 자기의 생명이 어디서 오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다. 생명이 떠난 육신은 그대로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즉 단순한 물질인 것이다. 물질에 불과한 육신에 생명이 들어오게 되면 눈으로 볼 수도 있고, 귀로 들을 수도 있고, 코로 냄새 맡을 수 있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육신에 생명이 들어와야지만 "삶"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생명의 출처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불교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보고 미(迷)했다고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질문하면 "내 몸 속에 있는것, 즉 나(我)라는 몸 전체가 생명이다"라고 대답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즉온아(卽蘊我)>>라고 한다. 온(蘊)은 오온(五蘊)을 가리키는 말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연에 의해 생멸 변화하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을 말한다. 그러므로 즉온아는 오온에 상즉해서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집착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외에도 소승불교(小乘佛敎)의 독자부와 경챵부에서처럼 오온에 즉한 것도 여윈 것도 아니라는 학설도 있고 오온을 떠나서 내가 있다는 학설도 있다.
이러한 학설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국한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몸 속에 생명이 있으며,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도 그와 같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파리의 수명이 21일이라면 파리는 그 속에 생명이 있어 21일밖에 생명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만약 이런 생각이 옳은 것이라면 우리 생명의 공간을 자로 재면 여섯자도 못되고 시간적으로는 육, 칠십년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 생명은 "횡변시방"이요 수궁삼제라는 말과 같이 공간적으로는 시방에 가득찼고, 시간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끝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의 정체를 잘못 알고 사니 바른 생활이 안 되고 어긋나는 생각이 이어져 나와 그것이 입으로 가면 구업(口業)이 되고 몸으로 가면 신업이되고, 생각으로 가면 의업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 구, 의 삼업(三業)이 생명의 본질과는 맞지를 않아 일법계를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의 근본자리와 서로 상응하지 못해서 근본 생명과 어긋나는 그림자가 나오는 것을 합하여 오온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우리들이 지금 아무 의심없이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난 후에 중생의 세간을 살펴보니 이과 같이 내 몸 속에 따로 내가 하나 있다는 망상(妄想)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중생의 삶은 전후사방의 좁은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내 속에 나라는 생명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생명은 중생이며, 그러한 중생이 사는 세계를 중생세간(衆生世間)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중생에게 전체 생명(法性)을 떠나서 내 생명이 따로 하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설하셨던 것이다.
2) 기세간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란 생명의 본질인 법성은 원융해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나라는 분별을 가져 구분을 하고 집착을 하면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앉아서 나라는 집착을 한다고 해도 법성은 원융한 그대로이다. 이 허공이 탐이 난다고 해서 칼로 잘라내어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성도 자기 것이라고 집착을 한다고 자기 것이 될 수가 없다. 불가분(不可分)이라 가히공간적으로 나눌 수 없고, 불가단(不可斷)이라 가히 시간적으로 끊을 수 없는 것이 법성인 것이다. 이것을 자꾸 나누고 끊어서 자기 것으로 하려고 하니까 불가능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법성의 세계와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법성의 세계와 멀어진 중생세간을 다른말로 18계(界)라고도 하는데, 육근(六根:눈,귀,코,혀,몸,뜻)과 육경(六境:모양,소리,냄새,맛,느낌,법), 육식(六識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을 말하며 이는 모두 번뇌망상의 근본이며, 탐(貪), 진(瞋), 치(痴) 의 근원인 것이다. 깨닫지 못한 중생세간에서는 18계가 한꺼번에 열려 안에는 육근, 밖에는 육진,중간에는 육식이 생기는 것이다.
중생세간은 우리와 같이 생명을 갖고 있는 무정세간(無情世間) 혹은 그릇 기(器)자를 써서 기세간(器世間)이라고도 한다. 우리들은 이 기세간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3) 지정각세간
중생세간과 기세간 속에 사는 우리들이 생명의 본질을 알지 못하여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을 미(迷)하다고 하는 것은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다. 여기서 말하는 지저각세간(智正覺世間)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세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18계의 구분이 무너져 하나로 보인다. 법화경 서품에서 부처님께서 깨닫고나서 미간(眉間) 백호광(白毫光)을 한번 놓으니까 동방으로 1만8천토가 비쳤다고 하는 말은 18계가 하나로 보인다는 의미이다.
부처님의 깨달은 눈에는 낱낱 물건의 본말시종 의보정보의 인과관계가 한꺼번에 보인다고 한다.
법화경 방편품에 보면 부처님께서 성취한 법을 십여시로 설명하고 있다. 즉 여시상, 여시성, 여시체, 여시력, 여시작,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여시본말구경등이라고 하여 낱낱 물건의 실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한번에 안다는 의미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깨달은 눈으로 중생세간을 바라보니, 모든 중생들이 과거에서부터 미한 상태에 처해서 앞으로 몇 백겁, 몇 천겁 후에까지 윤회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나라는 집착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집착을 아집(我執)이라고 하는데 아집으로 인하여 생사를 두려워하고 자기의 생홀이 욕망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고통과 번뇌에 쌓여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와같은 모양, 이와같은 성질......이와같은 중생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한꺼번에 평등하게 도장 찍어 놓은것 같이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깨달은 세계, 즉 지정각세간이다.
/옮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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