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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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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3 18:22:24, 조회 : 1,61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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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참선이란 수행법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수행법 중에 오직 참선만이 -
그것도 간화선(看話禪) - 가장 수승(殊勝)한 수행법이요,
나머지 다른 수행법들은 참선을 잘하기 위한 보조적(補助的)인
수행법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는경향이 많이 있다.
화두(話頭)를 들고 밤낮으로 씨름해야 하는 간화선법(看話禪法)
수행자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생각일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수행 방법에 대한 강한 믿음이나 의지 없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수행법에내 던지며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수행 방법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그 자부심으로 인해 다른 수행법을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최상승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자부심은 외롭게 자기 길을 가는데 있어 어떠한
난관(難關)에도 굴(屈)함이 없이 꿋꿋하게
나가가는데 작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다른 것과 비교해서
우열(愚劣)을 논(論)하는데 활용되어서는안 될 것이다.
주변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한다.
1. 기도는 단지 업장소멸을 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요,
참선을 잘하기 위한 보조적인 방편일 뿐이다.
2. 능엄주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들려고 애를 쓴다.
먼저 첫 번째 경우를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최후(最後)의 관문(關門)을 통과하려면 결국 참선,
즉 화두(話頭)를 깨치지않고서는 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근기(根機)가 낮고 업장이 두텁다보니 여러 가지 장애가
있게 되므로 능엄주와 같은진언(眞言)으로써 또 절로써
업장을 소멸시키고 장애를 거두어 낼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만약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참선,
즉 화두를 드는 것만 가지고는 업장소멸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꼴이 되는 셈이다.
내가 선방에 다닐 때 구참(久參) 스님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좌복에 앉아 맹렬히 화두와 씨름하는 것만큼 더 좋은
업장소멸법은 없다.”
이런 내용은 비단 구참스님들에게 뿐 아니라 옛 스님들의
어록에서도 본 기억이 있다.
참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완성(完成)된 수행법이다.
화두에 대하여 의심이 맹렬히 커 가면 커 갈수록 내 의식의
산만함은 가라앉고 집중도는더욱 더 커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소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분열되어 있던 나의 의식이 화두라는
하나의 의심의 축으로 똘똘뭉쳐지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상태가 화두라는 의심덩어리로 똘똘 뭉쳐져 있게 되면
내가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하는 모든 행위는 화두라는
의심덩어리 속에서 하게 되는 셈이다.
밥을 먹던지, 길을 가던지, 경(經)을 읽던지, 주력을 하든지 등등 하는
모든 것은 의심덩어리 속에서 용해(鎔解)되어 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그렇게 지어나가서 되는 것은아닌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저 화두에 대한 의심을 일으키려고
부단히 애쓰고 애써야 할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두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되어가는 사람들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스스로들 근기(根機)가 낮은가 보다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안되는 화두공부를 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도입(導入)하는 것이기도법의 하나인 '주력(呪力)'과 '절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하는 경우라면 능엄주와 절은 하나의
보조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하는 분들이 스스로 참선을 잘 하기 위하여 차입(借入)한
수행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차입한 주력(呪力)이라는 기도법을 하나의 보조적인
수행법 정도로 여기는 것은'기도는 왜 해야 하는가' 라는 기도의
목적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기도는 왜 하는 것인가?
기도라는 것도 하나의 완성된 수행법이다.
기도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정화(淨化)시켜 결국
자신의 본질인 '참 나'를 찾고자하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온갖 것으로 물들어져 있는 나의 내면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생각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기도를 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집중(集中)을 통한 몰입(沒入)'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참선에 있어서 화두라는 의심덩어리에 강한 집중이 필요하듯이,
기도에 있어서도 자신이 하는기도방법에 대한 강한 집중은
필수(必修)인 것이다.
기도라는 것도 단지 복(福)이나 갈구(渴求)하는 그런 것이 아닌
자신의 정화(淨化)를 전제로 해서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회복해 나가려는 실제적인 닦음의 행위라면 그것은 생각 속에서만
일어나는 관념적(觀念的)인 것이 아닌 실제적으로 내 자신이 그렇게
변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엄주라는 주력(呪力)과 절은 단지 업장소멸을 위한
보조적인 방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있다면 이는 기도에 대한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反證)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어떤 수행에 있어서도 업장을 소멸시키기 위한 수행이란
것이 따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모든 수행은 결국 자신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현재 물들어 있는 나의 상태에서 정화(淨化)된 상태로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참선이든 기도이든 마찬가지이다.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 것이다.
수행을 통해서 내가 바뀌면 바뀔수록 바뀌는 만큼 나로 인해
생겨난 갖가지 업장들도바뀌어 지고 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즉, 업장소멸이라는 것도 그 업장을 있게 만든 장본인인 내 자신의
변화 없이는 있을 수가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기도만을 해서는 안된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불자(佛子)들은 내가 무엇 때문에기도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자기정립을 해야 할 것이고, 단지 참선을 잘하기 위한 목적으로
능엄주와 절을 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만으로도 나의 완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면자신이 하고 있는 능엄주와 절하는
기도법에 당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될 것이다.
(※ 능엄주 공덕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수능엄경 제 7권에 부처님께서 대불정능엄신주를 설하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
“아난아, 이 부처님의 정수리 광명이 모이어 된 시타타파트라 비밀한
가타, 미묘한 글은시방(十方)의 온갖 부처님을 내시는 것이니,
시방여래가 이 주문으로 인하여위없는 사먘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며,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듣고 모든 마(魔)를 항복받고
외도(外道)를 이기는 것이며...”』)
그리고 참선을 위주로 하는 분들도 나의 믿음과 의지가 약해 오로지
화두에 매달리기가 원만하지 못하니 단지 능엄주와 절하는
공덕을 빌어 힘을 보태고자 하는 것임을 알고 공연히 기도한다는
것을 한 수 아래로 낮추어 보고 업신여기는 허물을
짓지 않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인
‘능엄주를 하면서도 화두를 들어야 하는가’의 경우를 살펴보자.
간화선(看話禪)의 경우 행(行) . 주(住) . 좌(坐) . 와(臥) . 어(語) .
묵(黙) . 동(動) . 정(靜) 간(間)에 항상 화두를 놓치지 않고
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을 쉽게 표현하자면 일상생활 속에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도
항상 화두에 대한 의심을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능엄주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들려고 애를 쓴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아비라기도를 하면서도 화두를 들며 하려고 애를 쓴다고 하는 분도
보았다.
위의 첫 번째 경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기도라는 행위도 고도(高度)의
집중(集中)과 몰입(沒入)이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평소에 이런저런 망상(妄想)으로 산만해져 있는 나의 의식(마음)을
능엄주를 통해서 온전히하나로 몰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나의 의식을 '능엄주를 하려는 나'와 '화두를 들려고
하는 나'로 일부러분열(分裂)시켜 가면서 화두를 하려 한다는 것을
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상생활에서의 단순한 행위들, 예컨대 밥을 먹거나 길을 걷는
행위에는 내 의식이 집중되어지지않아도 할 수 있는 행위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들은 화두를 챙기면서도 할 수 있는 행위들이다.
하지만 기도의 경우는 다르다.
기도의 행위에는 나의 온 정신이 몰아져야 한다.
의식의 적당부분만 기도행위에 할애(割愛)하고 나머지는 화두를
챙기면 되지 라는 방식은그 자체로 기도라는 것을 성의껏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왜 굳이 능엄주를 하면서 화두를 들려고 하는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데
능엄주를 하는 어려운 상황을일부러 만들어 가면서 화두를 들려고
애를 쓰려고 하는가?
능엄주 할 때는 그저 능엄주에, 그리고 능엄주를 하는 나 자신에
몰두하여야 한다.
참선을 하면서 보조적으로 능엄주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능엄주를 하는 순간만큼이라도 내가 하는 능엄주에
몰두하여야 한다.
능엄주가 끝나면 다시 화두로 되돌아오더라도...
능엄주를 하면서 화두를 들려고 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의식(마음)만 분열되고 분주해지게만드는 꼴이 된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화두만 하며 집중하려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많은 큰스님들은 '항상 깨어있으라' 라는 말씀을 하신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던지 항상 내가 하고 있는 것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 없이 늘 자각(自覺)하고
있으라는 말씀일 것이다.
이 점 깊이 음미(吟味)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본사아미타불
/옮겨온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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