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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불교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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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5 16:59:49, 조회 : 2,53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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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4001.jpg (58kb) 다운 :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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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과 학력위조 등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신정아 씨가 22일 ‘자전에세이’ <4001>을 출간했다. ‘4001’은 신정아 씨의 수감번호이다.
2009년 4월 10일, 1년 6개월의 실형을 산, 신 씨가 출감했다. 출감 후 신 씨는 ‘나는 말하고 싶었다’며 자전에세이를 쓴 것이다. 이 책에서 신씨는 스님들과의 관계를 고백해 눈길을 끈다.
종립대학에서 시간강사와 교수를 지내며 인연을 맺었던 스님들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어떤 것일까? 자신의 학력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스님부터, 자신의 전공을 살려 성보박물관 자문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스님, 사건 후 자신을 파면한 스님 등등, 사소하지만 ‘고백’이 담긴 스님에 대한 그녀의 회상은 어떤 것일까?
"영배 스님 허리 꼿꼿이 세우고 검사와 맞서"
<4001>에 등장하는 첫 스님은 영배 스님이다. 신 씨는 출감 후 영배 스님(당시 동국대 이사장)을 찾아갔다고 적었다.
신 씨는 “헝클어진 머리에 퉁퉁 불어터진 내 모습과는 반대로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당당히 검사를 대하고 계신 모습에 나는 놀라다 못해 혼자 화장실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역시 이사장님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녀는 “검찰조사 받던 중 울고불고 하다가 지쳐 세수라도 하려 화장실에 가다보면, 저쪽 귀퉁이 방에서 영배 스님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검사와 맞서고 계셨다”고 기억하며 “검사의 큰 소리에도 끄덕도 하지 않는 강인한 스님”으로 영배 스님을 묘사한다.
정념 원행 스님 면회·영치금, 현응 스님 식사 대접
신 씨가 특별히 기억하는 스님은 정념 스님(월정사 주지)과 원행 스님(통도사), 현응 스님(현 조계종 교육원장)이다.
정념 스님과 원행 스님은 신 씨가 감옥에 있는 동안 일부러 찾아와 격려해 주었고, 현응 스님은 출소를 ‘두부’ 대신 맛깔스런 저녁식사로 축하해 주었다고 신씨는 회상했다.
그는 정념 스님과 원행 스님에 대해 “든든한 영치금과 마음을 다스리는 책들을 내내 보내줘 평정심을 찾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적었다. 그는 또 출감 이후 “오대산 가는 날에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장대비가 내렸지만, 마치 유럽에 와있는 착각이 들 만큼 고즈넉하고 정갈한 풍경이었고, 오대산 향기로운 산나물은 내 입맛을 다시 살아나게 해주었다”고 회상, 출소후 월정사를 다녀온 사실도 밝혔다.
또 신 씨는 현응 스님(현 조계종 교육원장)에 대한 각별함을 드러냈다. 그녀는 현응 스님과 인연의 시작을 불교신문사 사장으로 있을 때 우연히 미술관에 다녀간 때로 적고, “2007년 5월 해인사 주지로 재임시 해인사 성보박물관 보수공사 후 개관할 당시 자문을 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출소 직후 현응 스님과의 만남을 “극과 극의 상황에서 다시 뵙는 것인지 모르지만, 스님은 행여 내가 의기소침해 할까봐 내내 격려로 기운을 북돋아주셨다”고 남다른 감사의 뜻을 적었다.
영담 스님, 장윤스님으로부터 불교 지키기 위한 책임자 마음
신 씨는 동국대 이사 영담 스님에 대해서도 기억을 풀어놓는다. 그녀는 “2007년 장윤 스님으로 인해 불교계와 동국대에 많은 파장이 일었다”면서 영담 스님이 공중파 인터뷰 과정에서 심한 말을 해 “입이 딱 벌어졌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녀는 “영담 스님은 순진한 개구쟁이 같은 분이다. 불교방송 이사장과 조계종 총무부장을 겸직한 어른 중의 어른이지만, 스님은 수줍음이 많고, 반면 직설적이고 뒤끝이 없는 분”이라며 “한쪽에서는 (공중파에서의 스님의 말을) 비방하지만 인터뷰는 딱 두 마디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한, 명쾌하고 진솔한 인터뷰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힌다.
그녀는 특히 영담 스님에 대해 “비롯 사건 당시에는 학교 징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나를 파면 시켰던 책임자였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장윤 스님으로부터 불교계와 동국대를 지키기 위한 책임자의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윤 스님, 이사임에도 재단 상대 수차례 소송 재단과 원수지간
신 씨는 장윤 스님에 대해서는 “동국대 이사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재단을 상대로 몇 차례 소송을 걸어서 재단과는 마치 원수지간 같은 상태였다”고 회고 하며 “2007년 홍기삼 총장 퇴임을 앞두고 장윤 스님이 000교수에게 제보를 받아 자신의 문제를 거론했다”고 기억했다.
신 씨는 2007년 10월 11일 구속 수감돼, 2008년 3월 31일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신정아는 이름 없이 ‘4001’ 수인번호로 살았고, 2009년 4월 10일 출소해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면서도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진 이야기를 바로잡고 싶었다”는 말로 자신의 자전에세이 <4001>을 출간이유를 드러냈다.
자료출처 : 불교닷컴(www.bulkyo21.com) 서현욱 기자 mytrea70@yaho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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