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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불교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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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5 19:42:39, 조회 : 1,829,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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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monk.jpg (155kb) 다운 :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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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이 문을 열고, 정진하던 수좌들이 세상으로 나선다. 지난해 11월 10(음 10월 15일)일 동안거 수행에 들어간 수좌들이 곧 선방 문을 연다. 속세의 고해와 격리돼, 선방 한 귀퉁이에 방석 한 개를 깔고 온갖 번뇌에 쌓인 망상을 버리고 참선 정진한지 100여일 만이다.
생사 문제를 깨지 않고서는 나오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입방한 수좌들이 문을 열고 잠시 나오는 날이 해제일이다. 2월 6일 해제일, 조계종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약 2,500여명의 수좌 스님들이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온다.
조계종조 도의국사의 선법이 이어진 설악산 가풍이 올곧은 신흥사 향성선원(香城禪院)도 이날 문을 연다. 4일 설악산 신흥사 향성선원을 찾았다. 신흥사에는 이곳 외에도 말사인 백담사에 무금선원과 기본선원이 있다. 무금선원은 생사를 타파하지 않고는 문을 절대 열지 않는다는 ‘무문관’이 있어 유명하다.
신묘년 동안거에 설악산에는 70여명의 운수납자들이 입방했다. 향상선원에 14명, 백담사 무문관에 11명, 기본선원에 46명이 찾아 정진했다.
지난 가을 조계종 종정 법전 대종사는 입제 당시 “화두를 가지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반대로 화두를 쥐고서 죽으려 하면 도리어 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납자들을 경책했다.
법전 스님은 “생(生)의 한 편에 얽매여 사(死)를 보지 못하거나 사(死)의 한 편에 얽매여 생(生)을 보지 못한다면 이것은 제대로 된 화두를 들고서 결제하는 납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죽음 속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결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항상 명심하라”고 당부했었다.
향성선원은 아침 3시에 기상해 예불 및 입선해 저녁 9시 방선한다. 하루에 4차례 10시간 동안 입선하고, 설악의 자연 속으로 포행에 나선다. 아침 저녁 예불을 올린다. 하루 세 번 먹는 게 일과다. 단조로운 일정이지만 촘촘하다. 입방한 11명의 스님들 모두 같은 일과다. 정진도 모두 마찬가지다. 생사의 번뇌를 타파한 깨우침을 얻는 게 목적이다. 종정 법전 대종사의 입제 법어로 당부한 그 생사 문제 해결이 정진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공부하는 과정 입 벌리면 그르칠까 우려된다”
향성선원의 수좌들은 올해 동안거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안거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보여 달라는 우문에 “공부하는 과정에 대해 입을 벌리면 수행을 그르칠까 걱정된다”고 무금선원 유나 영진 스님은 말했다.
영진 스님은 “선방에서 공부하는 것은 수좌들 개개인이 달라 내가 뭐라 드릴 말이 없다.”면서 “공부하는 과정에 대해 입을 벌리면 수행을 그르칠까 염려하는 게 수행자다. 그래서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수행 정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수좌들의 정진은 선지식에 의해 점검된다. 영진 스님은 “수행한 정도는 어른 스님들께 점검 받는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넘치는 것은 넘치는 대로 지도받는다.”면서 “안거를 해제하면 산철이다. 그 기간 역시 안거 기간 수행한 것을 점검하고, 건강도 챙긴다. 그리고 다음 안거를 준비한다. 그래서 수좌들을 운수납자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선방에 앉아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국민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선방은 어떻게 느낄까? 닫힌 선방에서의 수행이지만 그 도달점은 세상을 향한다고 영진 스님은 강조했다.
“수행으로 이웃에게 행복과 평안을 느끼도록 할 것”
영진 스님은 “풀 한포기 뽑으면 달나라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수행자들은 생사 문제를 타파하려 수행하지만, 결국은 세상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부처님이 출현하셔서 불법, 정법이 면면이 이어져 수많은 선지식이 나왔고, 이들은 이웃에게 법을 전해 행복과 평안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대승불교가 강조하는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위해 살겠다는 것은 어떤 것보다 위대한 원력”이라며 “수행자는 중생에 깨달음을 회향하고자하는 원력으로 살아간다. 올곧은 수행자 한 명이 더 나오면 그만큼 세상의 목탁과 소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안거 기간 동안 무문관에 들었다가 나온 무금선원 선덕 신룡 스님도 수행과 세상의 일이 둘이 아님을 강조한다.
신룡 스님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왕 태어난 이상, 생사의 문제를 타파하려는 수행자들의 정진은 여법하고, 최선을 다해 해야 할 일”이라며 “종단 수행풍토를 쇄신해야 한다는 부끄러움에서도 나라의 어려움과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신명을 낸 것”이라고 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가 되야 한다”
범어사 돈 선거 사건에 나라가 떠들썩한데 선방에서는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볼까?
영진 스님은 “죽비를 놓고 해제를 준비하면서 범어사 일에 대해 얼핏 들었다. 수좌들끼리 이 문제를 이야기 해보지 않았고, 어느 정도의 문제인지도 확실히 모른다”면서도 “만약 종단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고치고 보완하고 수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선거법을 보완해 참다운 수행자를 배출해 종단과 교단,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가 되도록 해야 한다”면서 “개선하고 보완할 문제라고 평소부터 느꼈다”고 했다.
선방을 나온 수좌들은 세상 속으로 만행에 나선다. 안거 동안 무엇을 얻었는지, 과정을 묻지 않는 게 미덕이라지만 세상 속으로 나서면 자신의 공부는 점검된다.
“해제는 또 다른 안거, 공부 놓지 말아야”
선원장 문석 스님은 “해제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다. 옛 스님들은 만행 길 떠나는 수좌들에게 글을 써주기도 한다. 만행길에도 공부를 놓지 말라는 것이다. 만행에서도 세상을 보면서 제방 선지식을 찾아 자신을 점검하고 담금질한다. 해제는 곧 다른 안거일 뿐”이라고 했다.
설악한 선풍은 신흥사 향성선원 외에도 백담사의 무금선원에서도 치열하게 일어난다. 무금선원은 ‘무문관’이다. 오직 11명에게만 특혜가 주어진다. 입방을 원하는 수행자들의 대기자가 많다. 백담사 소임자들이 무문관의 수좌들을 봉양한다. 하루 한번 오전 11시 지게에 공양을 짊어지고 와 배식구로 밥을 밀어 넣는다. 나머지는 수행자 스스로 정진할 뿐이다. 정해진 일정도, 지킬 시간도 없다. 하지만 치열하다. 생사를 넘나드는 원력이 세상과 격리된 방 한 칸을 지배할 뿐이다.
무애 스님은 “선방은 50분 정진하고 10분 포행한다. 일반 선원의 수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곳이 무문관이다. 2시간 자고 공부한다. 앉으면 다섯시간 이상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년 전 무문관에서 정진한 영진 스님은 ‘수행자를 시봉하는 대중들의 노고에 감사하다’고 했다.
“지게에 밥 가져온 시자의 죄송하다는 말에 울컥했다”
영진 스님은 “선원은 일분이 빠르지도 일분이 늦지도 않다. 한 사람이라도 늦으면 입승은 죽비를 치지 못한다. 언제나 정해진 대중생활”이라면서 “무문관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수행자가 정한다. 오직 밥 먹는 시간만 정해진다. 추운 겨울 11시에 들어와야 할 밥이 오지 않았다. 당시 조실이었던 숭산 스님이 열반하셔서 대중들의 일손이 모자랐다. 추운겨울 눈 속을 헤쳐 지게에 밥을 지고 온 시자가 죄송하다며 밥을 밀어 넣었을 때 울컥했다.”고 회상했다.
스님은 “눈길을 뚫고 밥을 가져오는 노고에 죄송하고 감사했다. 내가 무엇이라고, 저 노고를 마다않는지, 무문관에서 방일할 수 없었다”면서 “파리 한 마리 죽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불평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일에 감사하며 자신을 더욱 담금질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설악산 가풍은 조계종조 도의 선사의 선맥으로, 1971년 당시 종정 고암스님이 신흥사에 선원건립의 원을 세우고 전법제자인 성준스님에 이어졌다. 이후 현 조실인 오현 스님이 선원복원 원력을 세우고 1998년 백담사 무금선원을 건립하고, 이듬해인 1999년 지금의 향성선원도 복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 향성선원과 무금선원의 수좌들은 5일 오전 10시 해제법회에서 조실 오현 스님의 법문을 듣고 신묘년 동안거를 마감한다. 만행길은 편안함과 안락함이 보장된 길은 아니다. 세상은 활짝 열린 수행처다. 세상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수행의지를 다지고, 삶을 배운다. 운수납자들의 길이 빙판이다. 보장된 안전한 길을 멀리하고 자진해 빙판을 걷는다. 깨달음을 얻고, 중생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서다.
자료출처 : 불교닷컴(www.bulkyo21.com) 서현욱 기자 mytrea70@yaho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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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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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이란 남을 위해서 하는일이 아니다 그 또한 욕심이며 그 자체 마저 버려야 한다. 자신도 무엇이 아니된 일을 어찌 남을 가르치러 하는가 천지는 각각 스스로에게 물어 볼뿐이지 누가 무엇을 한것인가에 두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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