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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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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2 10:46:34, 조회 : 1,37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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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의사가 병을 알아서 약을 주었는데도 먹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그와 같이 사람들이 길로 인도 하였는데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허물이 아니다.
오직 모든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불유교경말씀)
부처님은 우리에게 있어 진리를 깨닫도록 인도해 주시는 스승이시며
길을 가르쳐 주시는 안내자이심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체적으로 열심히 배우고
안내해 주시는 길대로 성실히 믿고 실천해야 할 주인공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부천님의 부재하신 지금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길을 물어
저 피안의 세계에 나아갈 수 있을까요?
해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의 가르침입니다.
경전(經典)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진리의 깨침서이고
바른 길을 일러 주시는 귀중한 안내서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깨침의 말씀과 안내의 가르침을 좇아
열심히 수행 정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처님의 설하신 그 많은 경전 가운데서
과연 어떠한 경전이
자신의 근기에 적합한 경전인가 하는 점입니다.
흔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방편설, 혹은 병약설, 수기설법” 이라고
말합니다.
방편설(方便說)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시는 데 있어서 중생들이 처한 상황과 여건을
감안하여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써서 중생에게 가르침을
설하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병약설(說病藥)은
의사가 환자의 병에 따라 다양한 처방을 내리듯이 부처님은
중생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살펴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수기설법(隨機說法)은
중생의 마음과 근기에 따라 차별적인 가르침을 설하셨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부처님은 중생들이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근기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양한 내용과 형태의 가르침을
설하셨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전을 공부하면서 우리들이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어느 한 특정한 경전만이 특별히 뛰어나고 수승한 경전이라 인식하여
그 경전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의상 스님이 지으신 화엄경 법성게에 보면
“ 중생들은 자기 그릇에 따라 이익을 얻게 된다. (衆生隨器得利益)”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중생의 그릇이란 타고난 성품과 자질일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복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 얼마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느냐의 여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금은보화가 자기 앞에 놓여 있어도 그것을 취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본인한테는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굶주린 사람이 진수성찬을 차려 주어도 그 음식을 직접 먹지 않으면
자신의 굶주림을 해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들의 아픔을 치료하고
복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과 방법을 일러 주어도
그것을 중생들이 몸소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이익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미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에 근기에 맞는 다양한 수행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덟 가지 “바른 실천 수행(八正道)과 여섯 가지 바라밀수행(六波羅蜜)”이 그것이고 염불과 주력, 간경과 참선 등이 바로 그러한 수행의 길과
방법인 것입니다.
수행의 바른 길은 이미 우리들에게 제시되어 있고 근기에 따라
누구나가 실천할 수 있도록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내일이 아닌 지금 우리들이 신심을 내고 원력을 세워 정성을 다해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프다고 하소연하기만 하고 이미 주어진 선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병의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 비록 많은 경전을 공부하여도 게을러 바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곧 남의 소를 세고 있는 것 같아 진정 깨달음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법구경말씀)
알기만 하고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하여도 위의 부처님 말씀처럼
게을러 실천하지 않는다면 남의 소를 세고 있는 것과 같이
본인에게는 아무런 성과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이고
또한 본인이 알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조차 생명 없는 죽은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앎이 부족하더라도 아는 만큼 열심히 실천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자의 기본적 자세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은 열반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촉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니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諸行無常 不放逸 精進).”
우리는 이 언급된 사실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 줄도
너무 잘 알고들 계십니다.
그러나 원칙에는 동의하고 공감들 하시나 내 생활에서는
어떻게 이를 해결하고
방법들을 모색해야할지 난감들 하십니다.
매일 아침마다 부처님 전에 향 초불을 밝히면서 “깨달음과 밝음과 청정함에 귀의하겠다고” 서원과 발원을 하였는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를 반문하여 봅니다.
화엄경에“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모든 공덕의 어머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법우님들은 삼보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부처님의 바른 진리를 체득하고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여 참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 있어 믿음은 맹목적으로 부처님의 위신력에 매달리거나
또는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을 부처님이 알아서 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수동적, 피동적 믿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불교에 있어 믿음이 갖는 의미는 탐, 진, 치 삼독에 의지한
중생의 삶을 버리고
불법승 삼보에 몸과 마음을 바쳐 귀의하는 것이고
그러한 귀의와 원력을 바탕으로 본인 스스로가
부처님의 수승한 언행을 배우고
실천하여 부처님과 같은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자 발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의 자기 헌신이요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숭고한 발원인 것입니다.
어느 종교에서나 마찬가지이겠으나 이러한 믿음은 종교 신앙에 있어
출발점임과 동시에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뿌리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대지에 깊고 튼실히 뿌리 내렸을 때 비바람에 뽑히거나
가뭄에 메말라 죽지 않고 온전히 성장할 수 있듯이
불교 수행에 있어서도 삼보에 대한 깊고 간절한 믿음이 있어야
어떠한 난관에도 물러나거나 흔들리지 않고 고해의 이 사바세계를 건너
즐거운 저 열반의 세계에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혜민스님
평생을 하루처럼! 하루를 평생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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