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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도송(悟道頌)을 기다리며...
眞虛性宗 2012-11-30 07:08:42, 조회 : 1,685, 추천 : 0
임진년 동안거를 맞으며

오늘은 임진년 동안거가 시작되는 날이다.
동안거 결제를 맞아 종정 큰스님께서는 법어를 통해 모든 사부대중은 일상생활 중에 각자 화두(話頭)를 들고 화두의심으로 일념(一念)이 지속되도록 혼신을 다해 의심에 집중하라고 하시고 ‘화두의심 한 생각에 빠져 부처님 진리의 세계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 조사스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장부(大丈夫)가 되라’고 당부하셨다. 열반하신 성철 큰스님께서도 ‘수도인은 송곳으로 다리를 찌르고, 바늘로 입을 끌어매고서, 오로지 일체 만사를 다 버리고 영원불멸하는 자성을 밝힐 따름이다.’라고 하시며 수행을 독려하신 바 있다.

생사의 관문을 타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행에 매진하는 기간, 그것이 안거이다. 오늘부터 수천의 운수납자들이 제방의 선원에 방부를 들이고 석 달에 걸친 가행정진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진의 끝에서 부르는 깨달음의 노래가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이 경봉 큰스님, 성철 큰스님, 혜암 큰스님 등 많은 어른들께서 안거 기간에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을 남기신 바 있다.

   큰스님들의 오도송

올해 탄신 12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던 경봉 큰스님은 1927년 동안거 기간에 화엄산림법회를 개설하고 정진하던 중, 11월 20일 새벽 삼소굴의 방안에서 촛불이 출렁이며 춤추는 것을 보는 순간, 눈앞이 환히 밝아지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때 남기신 오도송이 이것이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我是訪吾物物頭)
눈 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目前卽見主人樓)
껄껄껄 이제야 만나 의혹 없어지니(呵呵逢着無疑惑)
우담화 꽃빛 온 누리에 흐르네(優鉢花光法界流)

올해로 탄신 100주년을 맞는 성철 큰스님도 1940년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동안거를 지내시던 중 확철대오를 하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기셨다.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黃河西流崑崙頂)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日月無光大地沈)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서니 (遽然一笑回首立)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 (靑山依舊白雲中)

성철 큰스님의 절친한 도반이셨던 향곡 큰스님도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제방의 선객들과 용맹정진에 들었던 차에 성철(性徹) 스님이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 바야흐로 산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비로소 죽은 사람을 볼 것이라는 법문의 뜻이 무엇인가?’ 라고 묻자 화두 일념에 들었다가 도량을 걷던 중에 문득 자신의 양손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대사각활(大死却活)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그 기쁨은 이런 오도송으로 남았다.

홀연히 두 손 보고 전체가 드러나니 (忽見兩手全體活)
삼세의 불조가 다 눈 가운데 꽃이로다. (三世佛祖眼中花)
천 경전과 무수 법문, 다 무슨 물건인가 (千經萬論是何物)
이로 좇아 불조가 다 몸을 잃어버렸도다. (從此佛祖總喪身)

봉암사에 한번 웃음 천고에 기쁨이요 (鳳岩一笑千古喜)
희양산 구비구비 만겁에 한가롭네. (曦陽數曲萬劫閑)
내년에도 또 있겠지, 수레같이 둥근 달 (來年更有一輪月)
금풍이 부는 곳에 학의 울음 새롭도다 (金風吹處鶴戾新)

성철 스님과 향곡스님의 일화는 서로 절차탁마하며 깨달음으로 이끄는 참된 도반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종정을 역임하셨던 혜암 큰스님 역시 1957년 겨울 동안거 기간에 오대산 사고암 토굴에서 정진하시던 중에 며칠 동안 의단이 독로하더니 몰록 심안이 열리며 생사를 타파하셨다. 이때 이런 오도송을 남기셨다고 한다.

미혹할 땐 나고 죽더니 (迷則生滅心)
깨달으니 청정법신이네 (悟來眞如性)
미혹과 깨달음 모두 쳐부수니 (迷悟俱打了)
해가 돋아 하늘과 땅이 밝도다 (日出乾坤明)

청화 큰스님 또한 45세 되시던 1968년 동안거 때에 구례 사성암(四聖庵)에서 용맹정진 중 동짓날 새벽에 활연대오(豁然大悟)  하신 후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겼다.

폭설이 오산(구례 앞산, 사성암) 머리를 휘덮고 (暴雪鰲山頭)
섬진강은 한 마리의 용처럼 굽이쳐 흐르네 (回龍蟾津流)
우주 깊숙한 곳에서는 영원한 대생명의 환희와 (天鼓幽自鳴)
하늘 북소리가 은은하게 쉼 없이 스스로 울려 퍼지고 (天鼓頌)
지혜와 자비의 마음 달은 홀로 밝아 허공을 끝없이 비추네. (虛明照心月)

청화스님께서 미고삼계성(迷故三界城)으로 시작되는 오도송을 남기셨다는 말이 있지만 그 게송은 전부터 내려오던 것으로 청화스님의 오도송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큰스님들이 안거 기간 동안에만 깨달음을 얻으신 것은 아니다. 안거철과 산철을 가리지 않고 용맹정진을 거듭한 끝에 오도의 법열을 얻으신 일 또한 허다하다.

송광사의 오늘이 있도록 만드신 구산 큰스님께서는 가야산 상봉아래 토굴 법왕대(法王臺)를 짓고 생쌀과 솔잎만 먹으면서 3년의 장좌불와 수행 끝에 1947년 마침내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였다. 이 때 남기신 오도송은 다음과 같다.

깊이 보현의 터럭 속에 들어가 (深入普賢毛孔裏)
문수를 붙잡으니 대지가 한가롭구나. (捉敗文殊大地閑)
동짓날에 소나무가 저절로 푸르니 (冬至陽生松自綠)
돌사람이 학을 타고 청산을 지나가네. (石人駕鶴過靑山)

참사람 운동을 펼치신 서옹 큰스님께서는 1967년, 56세 되시던 해에 백양사 쌍계루 아래 돌다리 사이로 흐르는 물살을 보고 확철대오하여 이런 오도송을 남기셨다.

상왕은 위엄 떨치고 사자는 울부짖는다. (象王嚬呻獅子吼)
번쩍이는 번갯불 가운데서 사와 정을 분별하도다. (閃電光中辨邪正)
맑은 바람이 늠름하여 하늘과 땅을 떨치는데 (淸風凜凜拂乾坤)
백악산을 거꾸로 타고 겹겹의 관문을 벗어나도다. (倒騎白岳出重關)

현 종정이신 진제 큰스님께서도 1967년 향곡선사께 전법게를 받으실 때까지 두 번의 오도송을 읊으신 바 있다. 28세 되시던 해에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라는 화두 관문을 타파하여 초견성을 하신 후 다시 ‘일면불 월면불’이라는 화두에 매진하여 마침내 고인들이 겹겹으로 베풀어놓은 온갖 차별법문(差別法門)에 걸림이 없이 통하게 되었다. 이 때 이런 오도송을 남기셨다.

한 몽둥이 휘두르니 비로정상 무너지고 (一棒打倒毘盧頂)
벽력 같은 일 할에 천만 갈등 흔적 없네. (一喝抹却千萬則)
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二間茅庵伸脚臥)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海上淸風萬古新)

여러 어른 스님들의 오도송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치열한 수행의 결과이자 개인의 견성에 그치지 않고 대중을 제접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어른들 가운데 후학들을 지도하고 대중들에게 설법하시기를 주저하신 분들은 아무도 없다. 맑은 혜안에서 우러나오는 가르침으로 언제나 사부대중들에게 바른 길을 열어주셨다. 그것이 바로 깨달은 이의 진면목일 것이다.

이 분들의 수행 과정은 말 그대로 분골쇄신의 과정이다. 잠을 쫒기 위해 얼음을 물고 수행하셨다던 경봉스님이나 혹한의 추위에도 방에 불을 때지 아니하고 하루에 잣잎과 생콩 10알씩을 먹으며 용맹정진 하셨다던 혜암스님, 생쌀과 솔잎만 드시면서 장좌불와를 하셨다던 구산스님 등 이 어른들이 보여준 수행은 가히 극한의 고통을 넘나드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넘어 깨달음의 세계를 열어주셨다.

   오도송이 끊어진 선가(禪家)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스님들의 오도송은 듣기가 어려워졌다. 과문한 탓인지, 아니면 눈 밝은 스님들끼리만 내밀하게 주고받으면서 인가를 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도송이 사라진 선가(禪家)는 대가 끊긴 종가(宗家)와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말을 오도송에 집착하는 행태라고 비판할 수 있다. 또한 예전의 큰 스님들은 한문에 익숙하고 한문적 소양이 풍부하기에 자연스럽게 한문 게송을 읊을 수 있지만 한글세대 스님들에게 한문 게송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말도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부정하거나 반박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오도송이 마치 깨달음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며, 한문 게송 만이 오도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서옹 큰스님께서도 꼭 오도송을 한문으로 하라는 법은 없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오히려 옛 큰스님들이 보여주신 오도 이전의 수행과 견성 이후의 행로에 주안점을 두어야 그 분들의 깨달음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른들은 오도 이전에는 목숨을 걸고 수행을 하셨다. 생사의 관문을 뚫기 위해서는 당연히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 수행의 과정은 자발적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고통의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선가가 너무 풍요롭지는 않은가? 지금 불가의 풍토가 도인이 나오기 어렵고, 나와도 알아줄 이가 없다는 한탄에 앞서 그 풍토부터 바꾸어야 하지는 않을까? 결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해제비의 많고 적음을 저울질하고 대중공양의 다소를 말한다는 일부의 이야기에서 자발적 빈곤과 기아의 수행과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스님들의 오도송보다 성명서를 더 접하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대중은 삼계를 뛰어 넘는 대 자유인의 호탕한 사자후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큰 스님들의 오도송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이후 그 어른들께서 대중을 향해 무량한 법문을 펼쳐주셨기 때문이다. 세간사에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은 눈 밝은 이의 청량한 법음을 고대한다. 그것이 한문이든, 한글이든 무슨 상관이랴... 마치 연극‘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부랑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된 것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다. 이번 안거 기간 동안에 새로운 오도송, 삼계를 뒤흔드는 큰 사자후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자료출처 : 불교포커스(www.bulgyofocus.net) 2012년 11월 28일 (수)
김관태_경영컨설팅 살림/山林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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