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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불교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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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0 15:17:18, 조회 : 2,07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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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정화 이후 신도들은 스님들로부터 토사구팽 당했다.”
불교 조계종의 재가불자(신도)들이 출가승 중심의 현 종단체제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신도운동이 한국 불교가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이 출가승의 종속적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종단의 재산처분과 운영관리 등에 재가자의 참여폭을 넓힐 것과 사찰의 주요 수입원??문화재관람료의 과감한 포기까지 촉구했다.
지난 14일 조계종 포교원과 중앙신도회가 공동주최한 ‘신도운동 50년 평가와 올바른 신도상 정립’을 주제로 한 연찬회는 3시간이 넘게 재가불자들이 서운함을 토로하는 자리가 됐다. 왜 그랬을까. 그 배경은 이날 박희승(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차장이 발표한 ‘조계종 중앙신도회 50년, 성찰과 전망’이란 발제에서 엿볼 수 있다.
광복 직후 한국 불교계는 일제의 잔재로 평가되는 대처승(결혼한 승려)이 전체 승려의 80~90%를 차지했다. 대처승을 승단에서 몰아내는 정화운동은 현재 조계종의 정통성을 구성하는 핵심 운동이다. 1945년 9월 비구승 결집체인 선학원이 만들어지고 곧 바로 불교청년회 등 재가자단체와 함께 대처승의 승려 자격을 박탈하는 교도제(敎徒制) 실시를 포함한 불교개혁운동이 시작된다.
6·25전쟁 직후 1954년부터 본격화된 비구승의 승단정화운동에서 이종익 이재열 이정수 등 재가불자들을 중심으로 한 ‘불교정화추진위원회’등 신도단체들의 외호(外護·외부에서 보호해 줌)는 큰 힘이 됐다. 마침내 1955년 8월 비구승 측이 종권을 장악했고 , 다음달 전국신도회가 창립된다. 조계종이 자리잡는데 결정적??역할을 하면서 신도회는 1960년대만 해도 종권의 지도권(영도권)은 출가승단이, 운영권은 재가자들이 맡을 것을 주장할 정도로 위세가 셌다.
그러나 1973년 사찰에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토록 하면서 출가자
승단은 탁발이나 신도의 시주에서 벗어났으며, 이같은 특수상황
은 신도회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낮추는 계기가 됐다.
이날 이건호 전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은 “정화운동 시작 당시 대부분 스님들은 공양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어려웠고, 재가자들의 협력이 절실해 전국신도회를 조직했던 것”이라며 “그러나 이후 비구스님들이 정화불사의 전리품을 독점했고 신도회는 버림받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손안식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은 “조계종이 종단 기틀을 마련할 당시 종단을 사부대중(남녀 출가승과 남녀 신도) 공동체로 규정한 만큼 스님과 재가자의 지분은 1:1인데도 스님들이 재가 신도회를 멀리하고 스님 중심으로 종단을 이끌어감으로써 신도회는 거의 존재가 없을 정도로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최연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은 “종단의 재산처분과 운영관리의 모든 권한을 출가승이 독점하면서 재가자는 종단운영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사부대중공동체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며 “과 거에도 제기된 영도권과 운영권의 역할분담이 지금의 종단현실에 맞게 지속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종단이 살고 불교가 사회적 존경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종단이 공익성과 도덕성에 엄격해야 한다”며 “우리 스스로 공익성을 확보하고 종단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특정사찰을 배불리거나 종단의 비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는 문화재관람료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박 차장은 “문화재관람료를 무조건 없앤다는 것은 문
제”라며 “문화재 유지, 보수 등을 국가예산에 편성한다는 조건하에 고려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반박하는 등 논란을 빚었다.
문화일보 2005.07.20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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