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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의 불교계소식

 “조선 승려 천민 아니었다”
眞虛性宗 2013-12-06 06:42:19, 조회 : 1,945, 추천 : 0
조선 시대. 억불숭유로 승려는 도성도 출입할 수 없는 천민 취급을 받았다는 기존 인식을 뒤집는 주장이 다시 한 번 제기됐다.

손성필 연구원(한국고전번역원ㆍ사진)은 5일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한 호국불교 연구 제2차 세미나에서 고영섭 교수의 주제발제에 논평자로 참석해 이같은 주장을 펼쳤다.

손 연구원은 최근 <보조사상> 제40집에 게재한 ‘조선시대 승려 천인신분설의 재검토’에서도 “조선시대 승려는 천인 신분이 아니었다. 승려천인 신분설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승려 천민설은 일본 학자 주장”

손 연구원은 “조선시대 승려가 천민이었다는 승려천인 신분설은 일본인 관학자 다카하시 토우루가 주로 유포한 담론이었다”며 “승려가 8개의 천한 신분이었다는 팔천설은 당대의 자료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허구적 주장이었다. 승려의 도성출입제한도 18세기말까지 법으로 정해진 바 없다. 실효성도 의심된다”고 했다.

손 연구원은 조선 후기의 승려들을 ▷총섭 승장과 같은 승직자 ▷승가선·승통정과 같은 면역승 ▷종장·강백과 같은 선승과 교학승 등 고위 승려층과 ▷도성 주변 걸량승이나 비승비속의 재가승 등은 최하위 승려층으로 구분했다.

또, 선비 계층[士族]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었다. 조선말기에 이르러 사족층이 수적으로 팽창할수록 사족층의 층위도 분화됐다고 설명했다.

손 연구원은 “문집을 남길 수 있었던 사족은 사족층 가운데에서도 상층 사족이었다. 하층의 승려를 가마를 메는 역할 등으로 부릴 수 있었던 사족은 대부분 수령 이상의 최고위 사족이었다”고 했다.

손 연구원은 “우리는 조선시대 여러 계층 가운데 하층으로 생활하던 승려상과 상층의 생활을 누리던 사족상이 결합된 왜곡된 역사상을 통해 조선시대 불교와 승려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선후기 승군을 조선시대 일반적 승려상으로 보아 온 관행도 재고될 필요가 있다. 승군의 역할·위상은 당대 불교계와 사회의 다양한 승려층에 대한 고려를 통해 신중히 재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조선 시대, 사찰에 직접적 제재도 안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성리학 이념에 따라 국가가 불교계를 일방적으로 탄압해 왔다”는 인식에 대해 손 연구원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손 연구원은 “15세기 전반 불교정책은 불교계에 대한 국가 지원을 축소하고 국가체제에서 불교적 요소를 축소해 국가 재정·군사를 굳건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했다.

“국가 관료체제의 일부였던 승정체제는 선교양종으로 축소됐지만 계속 유지됐고, 사찰에 대한 직접적 제재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 지원에 크게 의존하던 사찰은 큰 타격을 입어 도태됐지만, 많은 사찰이 사찰 경제 기반을 통해 계속 유지됐다”고 했다.

“16세기에 있었던 도첩제 폐지도 국가체제에서 불교적 요소를 제거해 백성을 교화하는 것에 있었다. 불교계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을 지향하지는 않았다”고도 했다.

손 연구원은 16세기 집필된 <동국여지승람>에 1658개 이상의 사찰이 기록돼 있고, 당시 불교서적 간행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본보기로 들었다.

“승려 호적 등재까지 실시됐는데, 무슨 탄압”

손 연구원은 “임진왜란으로 성리학 이념에 따라 불교를 국가체제에서 배제하려던 정책은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며 “휴정 스님에게 <경국대전>에 규정됐던 선교양종판사 대신 도총섭이란 승직을 제수한 것이 그 본보기”라고 말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성리학적 명분론에 따른 불교정책은 균열될 수 밖에 없었고, 국가는 불교를 국가체제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손 연구원은 “(불교의 국가체제 수용을 통해) 승직 제수, 승가선·통정첩 발급, 승군 동원 등이 이뤄졌다. 17세기 중반에는 승려의 호적 등재까지 실시됐다”고 했다.

“불교만 살펴서는 불교 제대로 몰라”

손 연구원은 “조선시대 불교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식민지 근대기 형성된 부정적 관점을 반성하고 유불의 이분법적 관점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선시대 승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불교계 현실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국가·사회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현대 한국불교가 사회(중생)를 어떻게 이롭게 할 것인가를 모색하려면 불교계뿐 아니라 현대 국가·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영섭 교수 “승군제는 참여불교”

이에 앞서 고영섭 교수(동국대)는 주제발제 ‘조선후기 승군제도의 불교사적 의의’를 통해 “(천대 받던) 조선후기 스님들은 부역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조선후기, 스님들에게 짐 지어졌던 승역은 불교계가 조선사회에 존재감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며 “승군제도는 참여불교로서의 호국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승려들의 사회적 역할과 역사적 존재감을 표출할 수 있었던 주요한 기제였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은 최근 발간된 <불교평론> 56집에 기고한 글에서 “조선 500년 동안 국가권력으로부터 억압·학대 당했다면 국가주의와 유착된 호국불교 전통을 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출처 : 불교닷컴(www.bulkyo21.com) 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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