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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불교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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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암사 결사 주역 ‘절구통 수좌’ 가야산 너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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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06:55:03, 조회 : 2,21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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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호랑이’ ‘절구통 수좌’로 유명한 도림 법전 대종사는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11대와 12대 종정을 역임했다.
법전 스님은 수행자의 상징으로 ‘절구통 수좌’로 유명하다. 스님은 왜색불교로 인해 피폐해진 한국불교의 정신을 되살린 봉암사 결사에 동참했다. 왜색불교의 폐해는 선불교의 몰락을 가져왔다. 1945년 해방 이후 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자정운동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불교 역시 왜색불교를 벗으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성철 스님을 비롯해 청담·자운 스님 등은 문경 봉암사에서 선풍을 지키며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결사를 시작했다. 봉암사 결사는 출가자들이 결국 수행정신으로 돌아가 부처님법대로 살자는 결사운동에 법전 스님도 함께 했다.
법전 스님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마음공부에 일생을 바쳤다. 선방에 한 번 앉으면 구들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절구통 수좌’라 불렸다. 한 겨울 쌀 다섯 되로 밥을 지어 김치 단지 하나 두고 ‘내가 저 쌀이 다 떨어지기 전에 공부를 마치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겠다’며 묘적암에서 세 달 동안 목숨을 건 수행을 했던 이야기는 출가자의 본분을 보여주는 일화다. 법전 스님은 깨치지 못하면 살아나올 수 없다는 ‘생사의 관문’을 지나 한국불교의 큰 기둥이자 이 시대 마지막 도인,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으로 추앙받았다.
도림 법전 대종사는 1925년 전남 함평군 대동면 연암리에서 부친 김원중, 어머니 호정 최씨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기남.
스님은 어린 시절 서당에 다니면서 <천자문>과 <명심보감> <소학>을 익혔고 <통감>과 <맹자>를 읽었다. 스님은 어릴 때부터 말이 없고 과묵했다. 서당에서도 다른 친구들이 떠들고 뛰어놀 때 말없이 먹을 갈아 붓글씨를 쓰곤 했다. 스님은 글씨를 잘써 초서까지 익혔고 훈장의 칭찬을 받곤 했다. 법전 스님의 글씨는 단정하고 힘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법전 스님은 속가에 두면 단명할 팔자라는 이야기에 부모님의 결정으로 열 네 살이 되던 해 출가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장성 백양사 청류암에서 묵담 스님을 만났다. 청류암은 일제 강점기 민족교육의 산시인 광성의숙이 설립된 곳이었다.
스님은 청류암에서 행자생활을 했다. 금담-초의-만암으로 이어진 조선 율맥을 계승한 묵담 스님은 계율을 생명처럼 여기고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지낸 호남제일의 율사였고, 선과 율, 이사, 내외를 겸한 당대의 선지식이었다. 법전 스님은 이 엄한 율사 밑에서 행자를 지냈다.
법전 스님은 백양사 운문암 선원에 마음이 쏠렸다. 큰 절에서 식량을 주면 지게에 지고 올라가는 모습이 행자 법전에게는 예사롭지 않았다. 당시 운문암 선원에서 구산 스님이 수행하고 있었다. 구산 스님은 어린 행자 법전을 불러 자신의 무릎에 재우곤 했다. 엄한 묵담 스님이 찾아도 구산 스님이 감싸주었다. 훗날 법전 스님과 구산 스님은 해인사에서 6·25전쟁을 같이 겪었다. 구산 스님은 훗날 송광사 방장으로 효봉 스님의 법을 이어 정진했다.
행자 3년 만에 법전 스님은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서당에 다녔지만 속가 생활은 어설퍼 보였고, 영광 불갑사에 놀러 갔을 때 스님들의 권유에 결국 출가해 설제 스님을 은사로, 설호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열 일곱 겨울의 일이었다.
법전 스님은 계를 받고 백양사 강원에서 불갑사 공비생(公費生)으로 공부했다. 스님은 그곳에서 기라성 같은 스승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한국 근현대 불교의 거목이자 훗날 봉암사 결사의 주역인 성철·청담·향곡·자운 스님 등 선지식을 만나 바른 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법전 스님은 봉암사 시절 ‘탁발도 수행’이라고 했다. 봉암사 대중은 탁발도 누구나 지켜야 할 규칙이었다. 처음 탁발을 나가면 얼굴이 후끈거려 염불은커녕 얼굴도 들기 어려웠다. 법전 스님은 자운 스님과 탁발을 했다. 자운 스님은 언제나 법전 스님에게 가고 싶은 곳을 먼저가라고 들을 떠밀었다. 그리고 나서야 당신도 길을 나섰다. 걸식하는 자인 비구가 탁발을 나가는 것은 당연하고 즐거운 수행이었다.
봉암사 결사를 마친 스님은 통영 안정사로 갔다. 평생의 스승인 성철 스님이 그곳에 있었다. 성철 스님은 저녁 예불 뒤에는 꼭 108번의 절을 했다. 법전 스님도 은사와 함께 절했다. 그 이후 법전 스님은 매일 한 번 108배를 했다. 법전 스님은 참선 수행 빼고는 108배가 유일한 수행법이었다. 성철 스님은 법전 스님을 데리고 범어사에가 자신의 은사인 동산 스님에게 인사드리곤 했다. 이런 인연으로 법전 스님은 안정사와 천제굴에서 사는 삼년 동안 동산 스님 회상에서 공부했다.
당시 성철 스님은 <증도가>를 법전 스님에게 주면서 “공책에 베껴 쓰라”고 했다. 스님은 <증도가>를 배우기로 한 전날 밤 성철 스님은 법전 스님에게 물었다. “군불견(君不見)가.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말해보라.” 노장은 답을 재촉했다. 결국 법전 스님은 “노장 스님이 군불견가를 물의시면 제 발로 노장 스님의 등가죽을 차버리겠습니다”고 답했다. 그 뒤로 성철 스님은 법전 스님에게 “글을 배우라”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철 스님은 법전 스님에게 ‘도림(道林)’이란 법호를 주었다. 정식으로 법제자를 인가 한 것이다.
법전 스님은 서른 세 살 때인 1957년 경북 문경 대승사 묘적암에서 수행했다. 당시 스님은 ‘저 쌀이 다 떨어지기 전에공부를 마치든지 아니면 죽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산문을 나오지 않고 공부했다. 당시 묘적암에는 쌀 두 가마니가 있었다. 법전 스님은 한 겨울 찬밥덩이에 김치 한 조각 물 한 모금으로 버티며 정진했다. 하루 세끼 밥 해먹는 것도 번거로웠던 스님은 밥을 다섯 되 지어 김치 단지와 두고는 수행했다.
성철 스님이 파계사 성전암에서 10년 동안의 동구불출에 들어갈 때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친 사람이 바로 법전 스님이었다.
법전 스님은 목숨 건 토굴 수행 끝에 오도송을 읊었다.
“거울과 거울이 서로 비치니 비치는 것과 그림자가 둘 다 없더라. 이것이 또한 무슨 물건이냐 청산이 백운 속이더라”
법전 스님은 ‘절구통 수좌’로 유명하다. 선방에서 퍼진 별명이다. 법전 스님은 수마를 조복받고 며칠 때 한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용맹정진을 하는 것 때문이다.
법전 스님은 1967년 해인총림 유나를 지냈다. 1969년부터 김천 수도암에 주석하면서 선원을 복원하며 15여년 간 납자들을 제접했다.
법전 스님은 종단이 어려울 때 1981년 중앙종회의장을 맡아 교단을 안정시켰고, 1982년에는 총무원장을 잠시 맡기도 했다. 하지만 종단 소임도 잠시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와 1985년부터 해인총림 수좌로 선원에 주석했다. 1986년 조계종 호계위원장과 해인사 주지 소임을 맡았다.
법전 스님은 1994년부터 3년간 해인총림 부방장을 지내다 1996년 방장으로 추대됐다. 이후 2000년 12월 원로회의 의장에 추대됐다. 법전 스님은 2002년 3월 26일 대한불교조계종 11대 종정에 추대됐고, 다시 2007년 3월 14일 12대 종정에 추대됐다.
법전 스님은 평소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나와야 한다는 믿음으로 눈 밝은 사람을 키우는 것이 염원이었다. 부처님 법대로 수행하던 봉암사 결사, 시대를 이끌 사람을 키우겠다며 산 속 허물어진 절을 중수하고 선원을 복원하던 시절,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는 먹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탁발하고 농사짓고 나뭇짐 지면서 수행하던 시절, 골부에 진척이 없어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던 시절까지, 법전 스님은 오직 ‘밥값은 했는가’라는 외침에 바보처럼 절구통처럼 묵묵히 수행정진했다.
열 네살에 절에 들어와 하고자 하는 일을 죽을 각오로 하면서 정진한 도림 법전 대종사는 갑오년 12월 23일 11시 25분, 자신의 법호를 따 창건한 도림사에서 원적했다.
(임혜봉 <종정열전>, 한국불교기자협회 <한국의 대종사들> 등 참고)
자료출처 : 불교중심 불교닷컴(www.bulkyo21.com) 서현욱 기자 mytrea70@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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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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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스님께 삼배 올립니다.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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