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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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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구제님께 범망경(梵網經)에 대하여 질문 드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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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3 14:39:42, 조회 : 1,563, 추천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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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님이 글을 올리시면 띄어쓰기와 맞춤법 때문에 제가 또 교정의 글을 올려야 하니, 제가 질문 드립니다.
물론, 저는 구제님보다는 여러 부분에서 모자라는 초심불자이고 구제님 같은 직관력이 있지도 않소이다.
선정으로 따져도 대안반수의경의 止 단계 뿐이 안 되오. 오늘 진허스님으로부터 범망경 해설을 듣고 공부를 하다가 대승의 범망경과 초기경의 범망경을 접하게 됐소이다.
질문은,
1. 아래에 예시한 대승의 범망경과 초기불교 범망경의 차이점이 무엇이고?
2. 왜? 제가 이글 중 어떤 부분 때문에 이글을 구제님께 질문의 대상으로 삼았나? 입니다.
항상 토론은 경전에 근거하거나 출처가 분명한 것을 가지고 토론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무아을 자기라고 하면서 색수상행식의 취착을 가지고서 토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립니다.
실력 없는 스님들처럼,
답은 못하고 썩, 물렀거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신심이나 가져,
가서 만 배나 해!, 빌기나 해! 너는 경험 안 해서 몰라! 네가 우주의 이치를 아느냐? 질문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꼬투리 잡고 등등. 이러지 마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의미의 "스펙"은 붓다처럼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아는 것이요!!!
(참고)
***여기서 표현되는 이상한 표시는 빠알리어 등 프로그램 자체의 충돌이나 인식 부족으로 인한 오류이니 빼고 한글만을 읽어도 맥락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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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범망경(梵網經)
불교 계율의 기본이 되는 경전 가운데 하나로 본래 이름은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제십>이다. 광본(廣本)의 <범망경>에서 보살의 계위와 계율에 관한 제10의 '보살심지'만을 따로 역출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장경>에서는 이 경을 대승보살계의 근본성전이라 하여 '대승율부'에 넣고 있다.
원래 <범망경>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남방 상좌부 경장인 <장부>의 제1경인 <범망경>인데, 이에 해당하는 한역은 <장아함>의 제21경인 <범동경>과 <범망육십이견경>이고,
또 하나는 구마라집 삼장이 번역한 <범망경>이다.
전자는 외도들의 62가지 견해를 서술하고 이를 논파함으로써 불교의 우수성을 천명한 것이고,
후자는 대승보살계를 설한 경전으로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부처님이 연화장세계의 광명궁에서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回向) 등을 차례로 설한 것이다. 이는 화엄경의 수행단계와 함께 불교사상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상권보다 우리나라에 널리 전승된 것은 하권의 계율이다.
하권에서는 보살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계율인 십중금계와 가벼운 허물을 다스리는 사십팔경계, 재가신도를 위한 육중계와 이십팔경계를 설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 부모와 스승과 삼보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배워 익혀야 한다고 설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하권만 따로 뽑아 보살계본이라 부르고 있는데 한국 불교승단의 조직 및 유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보살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이자 실천 덕목인 대승계율을 설하고 있어서 화엄종·천태종·정토종 등을 비롯한 대승불교 여러 종파의 근본 율전이 되어 왔다.
비구 250계와 비구니 348계의 구족계를 수록하고 있는 사분율, 오분율 등이 출가 승려에게만 적용되는데 반해 이 경의 대승계는 출가자와 재가자에게 두루 적용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경을 근거로 수계법회가 많이 열리고 불교도의 신행 규범으로 또 신앙의 근본 경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경은 범어나 팔리어로 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기록대로 본다면 본래 61품 1백 20권이나 되는 원문을 구마라습이 번역하면서 그 중 열째권인 <노사나불이 말씀하신 보살의 심지계품(노사나불설 보살심지계품)> 만을 출간하여 상, 하 두 권으로 만들었다.
상권에는 심지법문을 말했고, 하권에는 보살의 십중대계와 사십팔경구죄를 말했다.
경구죄란 중대한 죄는 아니지만 청정하지 못한 허물이 된다는 죄. 보살계는 심지법문을 주장한 대승계이며 성계이다. 그러므로 이 경은 율부에 속하지 않고, <화엄경>과 같은 부류에 든다. 이 경을 주석한 글이 많지만 신라의 태현이 지은 <범망경고적기> 3권과 원효의 <사기> 2권, 의적의 <범망경보살계본소> 2권 등이 유명하다.
[불교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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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범망경(디가니까야 첫 번째 경)
본문 요약
견해[1]란 아무리 다양해도 경험된 것(vidita, 느껴진 것)일 뿐이고, 그 경험된 것은 根.境.識 여섯 삼사 화합에서 기인한 감각 접촉에서 기인한 것이며, 그래서 다시 느낌-갈애-취착-존재-생-노사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고 8지 연기로 62견이 일어나는 구조를 밝히고 있으며 이렇게 견해는 조건 발생이기 때문에 견해의 그물을 뚫고 나오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연기의 발생 구조와 소멸 구조의 이해를 통한 견해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연기의 가르침을 설하고, 이는 사성제의 가르침으로 귀결된다.
Ⅰ. 서언
이 경전은 붓다께서 라자가하 날란다 사이에 난 대로를 따라가고 계실 때 유행승 숩삐야와 그의 제자 바라문학도 브라흐마닷따가 삼보에 대해 (비난)과 (칭찬)을 (서로서로 정반대로 말하면서) 붓다와 비구상가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붓다께서 아시고 제자들에게 남들이 불.법.승 삼보에 대해 (비방해도 분노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말며), 또 삼보 에 대해 칭송하는 말을 해도 (즐거워 하거나 기뻐하지 말고 의기양양해 하지 말라) 했다. 왜냐하면 싫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면(그것은 장애가)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범부들의 세속적인 계에 대한 칭찬을 언급하시고 계에 대하여 짧은 길이의 계, 중간 길이의 계, 긴 길이의 계 등 43가지 계를 설하셨다.
법에 대한 칭송으로 인류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견해를 과거에 대한 것 18가지와 미래에 대한 것 44가지로 분류해서 모두 62가지 견해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계신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견해는 62가지를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 이를 견해의 그물 또는 범천의 그물이라 부른다. 이 범망경은 인류가 가질 수 있는 견해들을 나열하고 이러한 견해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연기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Ⅱ. 본문 내용
붓다께서 제자들에게 남들이 불.법승 삼보를 비방한다 해서 분노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면 장애가 된다고 했다. 또 칭송에 즐거워하거나 기뻐하지 말라고 했다. 거기에 자극을 받아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의기양양하게 되면 장애가 된다고 했다.
(1) 여래에 대한 세속적인 칭송 : 계에 대한 칭송
범부는 제한되고 세속적인 계에만 국한하여 여래를 칭송한다. 계의 항목은 ① 짧은 길이의 계 26가지. ② 중간 길이의 계 10가지. ③ 긴 길이의 계 7가지를 설하고 계신다.
(2) 법을 통한 칭송
사람들이 심오하고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여래가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었으며, 이것을 본 후에 여래를 칭송하는 자들이 참으로 바르게 칭송한 자들이라 할 것이다.
1. 18가지 과거를 모색하는 자들
1) (영속론자들) : 4가지
①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마음이 삼매에 들어 수십 만생을 기억하고 그것을 근거로 (자아와 세계가 영속한다고 주장한다.)
②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마음이 삼매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괴겁과 성겁을 10겁까지 기억하고 그것을 근거로 자아와 세계가 영속한다고 주장한다.
③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마음이 삼매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괴겁과 성겁을 마흡겁까지 기억하고 그것을 근거로 자아와 세계가 영속한다고 주장한다.
④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논리가요 해석 가로서 갖가지 방법으로 추론하고 해석해서 자아와 세계가 영속한다고 주장한다.
2)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론자들): 4가지
① 세상이 파괴될 때 대부분의[2]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희열을 음식으로) (스스로 빛을 내고)(허공을 걷고) (행복한 상태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산다. 긴 시간이 지나고 이 세상이 다시 시작하는 시기에 초선천에 (텅빈 범천의 궁전이 출현한다.) 그때 어떤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광음천에서 텅빈 범천의 궁전에 옮겨 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홀로 살았기 때문에 불안함과 불쾌함과 초조함[3]이 생겨) (다른 중생이 여기에 오면 좋겠다고 갈망하였다.) (그러자 다른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범천에 태어나 그 중생의 동료가 됐다.) 그러자 먼저 태어난 중생이(자기의 소원때문에) 다른 중생이 생겨났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범천이고 전지 전능한 조물주며 창조자라고) 착각을 한다.(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를 창조하신 우리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 아닌지 … ) 뒤에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에게도 그가 그곳에 먼저 있었기 때문에 전지전능한 조물주며 창조자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먼저 태어난 중생은 수명이 더 길고 더 아름답고 더 힘이 세었으며 뒤에 태어난 중생은 수명이 짧고 못생겼으며 힘이 약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그는 출가하여 삼매를 얻어 바로 앞 전생을 기억하고는 ‘그를 전지전능한 조물주요 창조주로 항상 하고 영원히 변치 않고 존재하는 존재자라 생각하고 자신들은 무상하고 견고하지 못하며 수명이 짧고 죽어서 이곳에 태어났다.’ 라고 생각한다.
② ‘유희로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4] 이 들은 노는데 빠져서 sati를 놓아 버려 신들의 무리에서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 집을 떠나 출가하여 삼매를 얻어 단 한 생 앞만 기억하고는 ‘유희로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sati를 놓아 버리지 않아 그분들은 항상 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노는데 빠져 sati를 놓아 버려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아 죽어 이곳에 태어났다.’ 라고. 이것을 근거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을 설하며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③ ‘마음이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5]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 응시하였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였고, 타락하였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피곤하여서 죽어 이곳에 태어나 출가하여 삼매를 얻어 앞 전 한 생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분노로 응시하지 않아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 않아 신들의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항상 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고 영속 그 자체로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타락해서 죽어 그 무리에서 떨어져 무상하게 죽어 이곳에 태어났다.’ 라고. 이것을 근거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을 설하며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④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논리와 해석으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추론하고 해석하여 스스로 규명하여 이렇게 말한다. ‘육근[6]은 무상하고 견고하지 못하고 변하기 마련이지만 마음(citta, 心)과 마노(mano, 意)와 알음알이(識)라 부르는 이런 자아는 항상 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고 영속하며 존재한다.’ 이것을 근거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을 설하며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3)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들: 4가지
① 어떤 자들은 노력해서 색계 삼매[7]에 들어 유한하다는 인식을 가져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고 안다. 이것을 근거로 세상이 유한하다고 천명한다.
② 어떤 자들은 노력해서 무색계 삼매[8]에 들어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머문다. 이것을 근거로 세상이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③ 어떤 자들은 노력해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위아래로 유한하고 옆으로는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져[9] 세상에 머문다. 이것을 근거로 다른 주장을 거짓이라 하고 세상이 무한하기도 하고 유한하기도 하다고 천명한다.
④ 어떤 자들은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이 세상은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 이것을 벗어난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 라고 이것을 근거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4) 애매모호한 자들(不可知論 또는 懷疑論): 4가지
① 선 불선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두려워 하고 혐오하지만, 모른다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애매모호하게 마을 늘어놓는 경우다.
② 선 불선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잘못 설명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열의(chanda)나 욕망(raga)이나 성냄(dosa)이나 적개심를 가져올 것이다. 이것들은 나에게 취착이 된다. 이 취착을 두려워하여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경우이다
.
③ 선 불선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잘못 설명한다면 학식 있는 자가 다른 자들의 교리에 정통하여, 예리한 통찰지로 다른 견해들을 단번에 잘라 버린다고 생각, 즉 지자들이 계속해서 질문하고 따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경우이다.
④ 멍청하고 어리석어서 이런저런 것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16가지 질문 언급으로 상견과 단견 등의 질문들이 있다)
5) 우연발생론자들: 2가지
① 무상유정천(색계의 제4선천 두 번째천)의 신들이 인식이 생겨나면 죽어 이 세상에 태어나 집을 떠나 출가하여 삼매를 얻어 [재생연결의] 인식이 생겨난 것을 기억하고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는 우연발생논자가 된다.
②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 라고 천명한다.
2. 44가지 미래를 모색하는 자들
1) (사후에 자아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16가지
가. 자아가 물질을 가졌는가 아닌가에 따라 분류: 4가지
① ‘자아는 물질을 가진다.[10] 죽고 난 후에도 aroga(병들지 않는다).[11]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② ‘자아는 물질을 갖지 않는다.[12]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③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13]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④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14]
나. 자아가 유한 한가 무한한가에 따라 분류: 4가지
⑤ ‘자아는 유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⑥ ‘자아는 무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⑦ ‘자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⑧ ‘자아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다. 자아는 어떠한 인식을 가졌는가에 따라 분류: 4가지
⑨ ‘자아는 단일한 인식을 가진다.[15]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라고 함.
⑩ ‘자아는 다양한 인식을 가진다.[16]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라고 함.
⑪ ‘자아는 제한된 인식을 가진다.[17]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라고 함.
⑫ ‘자아는 무량한 인식을 가진다.[18]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라고 함.
라. 고락에 따라 분류 : 4가지
⑬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19]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⑭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20]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⑮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21]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22]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함.
2) 사후에 자아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8가지
① ‘자아는 물질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aroga(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함.
②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함.
③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함.
④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함.
⑤ ‘자아는 유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함.
⑥ ‘자아는 무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 라고 함.
⑦ ‘자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함.
⑧ ‘자아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함.
3)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 한다고 설하는 자들: 8가지
① ‘자아는 물질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aroga(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함.
②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함.
③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함.
④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함.
⑤ ‘자아는 유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함.
⑥ ‘자아는 무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함.
⑦ ‘자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함.
⑧ ‘자아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함.
4) (단멸론자들): 7가지
① (인간의 자아)라고 주장하는 자들로 이 물질은 四大(地.水.火.風)로 이루어졌고, 부모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멸하 여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들로 인간계를 말하며, 유물론적 사고 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② 욕계 천상(육욕천)를 말하며 (천상의 자아)를 주장, 욕계 육욕천에 태어난 중생들이 욕계 천상에서 목숨을 다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견해를 가지는 두 번째 멸론이다.
③ 색계 천상에 태어난 중생들이 색계 천상에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견해를 가지는 경우로 세 번째 단멸론이다.
④ ~ ⑦ 공무변처[23], 식무변처[24], 무소유처[25], 비상비상처[26] 등의 천상에 태어난 중생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견해를 가지는 경우이다.
5)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5가지
① 오근(안.이.비.설.신)으로 경험되는 세속적인 행복을 전부로 삼고 그것의 획득과 유지와 즐김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사는 것을 제일로 삼고 지금여기에서 다섯 가지 감각 적 욕망을 즐기는 것을 구경의 열반이요 최상의 행복[至福]이라고 주장하는 자들.
② 감각적 욕망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기 쉽고 변하고 바뀌는 성질이므로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불선법들을 완전히 제거한 초선정이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이라고 장하는 자들.
③ ~ ⑦ 2선, 3선, 4선 등을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주장하는 자들.
Ⅲ. 62가지 견해에 대한 결론
1. 62견은 단지 느낀 것이요 동요된 것일 뿐이다
이 세상은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중생들에게 지각된 세계라고 붓다께서 말씀하신 다. 지각이란 촉을 통해서 닿을 때 일어나는 느낌이다. ① 간접 경험이든 ② 직접 경험이 든 심지어 ③ 선정 체험까지 촉을 통한 느낌에는 견해가 발생한다. 그 견해는 각자의 욕구를 표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 62견은 단지 감각접촉을 조건한 것일 뿐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모든 견해가 지금 여기에서 체험하는 혹은 vedayita(체험한 것)에 바탕한 것일 뿐이다. 체험이란 根.境.識[27]의 삼사화합에 바탕하고 있다. 삼사화합이란 phassa (감각접촉) 이다.
3. 62견은 감각접촉 없이 경험 될 수 없다
감각접촉이란 phassa이다. 촉을 통한 느낌은 지각(知覺)이다. 지각(知覺)에는 견해(見解)가 발생한다.
4. 62견은 조건발생이요 괴로움을 생기게 한다.
육입. 촉. 수. 애. 취. 존재.생.노사의 8지 연기로 62견이 일어남을 밝히고 있다. 이 62견은 고정불변된 것이 아니라 모두 조건에 따라 생긴 것이다.
5. 62가지 견해의 그물에 걸림
62견은 삼매체험을 경험한 수행자들이 걸려 있는 견해의 그물들이다. 자기 동일성을 가진 존재론적 자아를 천명한 모든 종교는 바로 이런 그물에 걸려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란 것은 체험된것(vedayita)이고 그 체험은 근.경.식의 삼사화합이라는 감각접촉에 기인한 것이고 감각접 촉은 다시 느낌 갈애 취착 존재 생 노사로 전개되어 간다고 분명히 알 때 견해의 그물을 뚫고 나올 수 있다고 붓다는 결론짓고 계신다
6. 맺는 말
이 세계는 “육입(六入)을 통해 일어난다. 그 육입을 통해 세계가 알려 진다. 세계는 육입(六入) 위에 세워 지며, 육입속에 사라진다.”(SN169.) 이 것은 세계가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근. 육경. 육식에 의한 접촉으로 발생하는 느낌에 의한 지각된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지각이란 촉을 통해서 닿을 때 일어나는 느낌이다. (느낌)가 일어나면 견해가 생긴다.
인간은 견해의 동물이다. 인간은 매 순간 대상과 조우하면서 수많은 인식을 하게 되고 그런 인식은 항상 견해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견해에서 벗어나려면 六觸의 발생·소멸·맛·허물·벗어남 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고 설하고 계신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는 견해는 다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견해는 항상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라는 질문을 수반한다.
본 경은 팔정도의 첫 번째 정견과 바른 견해의 내용인 연기의 가르침을 천명한 가르침이다.
연기(緣起)의 가르침은 무아(無我)의 가르침이다. ‘무아(無我)’는 자기 동일성을 가진 존재론적 절대자를 부정한 것으로 이처럼 연기-무아로 존재론적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떨쳐 버릴 때 그것이 바로 견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이고 62견은 연기-무아를 통찰해서 볼 때 극복된다 는 것이다. 이 존재론적인 단정을 버리게 하려는 의도로 설하고 계신 경이 이 범망경이다.
유신견이 극복되지 않으면 아무리 높은 선정의 경지에 머물러도 그것은 견해의 그물에 걸린 것일 뿐이다.
*. 이 경전에서 참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인도의 브라만교와 오늘날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느님에 대해서 언급하고 계신 것 같다.
이 세상이 파괴될 때 욕계 전체와 색계 초선천까지 파괴되며, 그때는 모든 중생이 색계 2선천 이상에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 세상이 다시 시작하는 시기에 초선천에 텅 빈 범천의 궁전이 출현하고 색계 2선천의 중생 중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소진되어) 이 초선천의 텅 빈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그곳에 서 오랫동안 살았고 오랜 세월을 홀로 살다 보니 싫증과 초조함이 생겨 다른 중생이 여기에 오면 좋겠다고 소원 을 가졌다. 그러자 다른 중생이(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범천에 태어나 그 중생 의 동료가 됐다. 그러자 먼저 태어난 중생이 (마음의 소원)때문에 다른 중생이 생겨났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범천이고 전지 전능한 조물주며 창조자라고 착각을 한다.
인도의 브라만교의 범천이나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를 창조하신 우리 하느님이 위에서 말한 중생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대 망어 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며, 기독교인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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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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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석가모니 성인이 무엇을 하다가 간것인가 [생노병사]이거늘 아직도 만들어지 불법을 모르고 어찌 석가모니를 찾는가. 없는것은 없는 것이고 있는것은 있는것이다. 남의 종교를 무엇라 하는 당신의 그 마음은 아직도 초심 초자도 모르는 구나 천지는 일체 동하고 일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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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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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있거늘 어찌 아직도 이 천지에 사람이란 동물이 누구인지 모르는 구나. 천년을 가도 [중생은 중생이야] 깨닫지 못하면 일체 중생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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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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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구제님, 댓글 보니 반갑습니다. 그간 잘 보냈는지요? 댓글 중에 띄어쓰기와 맞춤법 틀린 곳이 15군데나 됩니다.이글은 남의 글이 아니고 니까야의 말씀과 동국역경원에서 편찬한 불교사전의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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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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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논쟁하고 싶지는 않고 토론하고 싶습니다. 제 질문에 답해 주시지요. 더운 날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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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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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님이 통찰력이 있다면, 저를 볼 수 있고, 알 것입니다. 쪽지를 보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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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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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전에 앞에서 제가 언급한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어느 정도 되지 않는다면 어떤 글이든 댓글을 달지 않고 틀린 개수만 지적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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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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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길거리에서 할 수 없듯이 토론은 여기에서 하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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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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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해보아라 남의 것은 남의 것일 뿐 아직도 그리하고 있는지 과거가 수천년을 흘러간 이 시점에서 눈만 보면 무엇을 하나 앵부새가 죽을 때 어떻게 죽는지를 알아야 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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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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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섯 군데 틀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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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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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댓글에 다섯 군데 틀리는 거 보니 이제는 지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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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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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올린 글은 보나 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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