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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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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8 16:35:34, 조회 : 1,656, 추천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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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의 길 - 서암 스님
때로는‘출가하여 중이 된다면 얼마 안 되는 인생이 아깝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이 태어나 한평생을 살면서 할 수 있는 보람있는 일들도 많지 않은가. 중이 된다는 것, 과연 대장부 한 생애를 걸어 볼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직업으로서의 승려 생활,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승려 생활이라면 그보다 더 비생산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의 모든 부정적인 현상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추구하여 그 열망이 승려 생활로 이어진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삶도 없을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고 큰 각성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출가하여 어려운 수행의 길을 걷는 것이 올바른 수행을 위한 가장 빠르고 좋은 길이며, 수행하여 얻은 것을 중생들에게 되돌려 주는 스승의 역할을 하기에도 적합한 것이 승려라는 신분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승려는 자신이 먼저 각성에 이르러야 하고,
어려운 수행을 통해 얻은 각성을 중생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존재다. 그러기에 승려 생활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입산하는 사람 중에는 세상살이가 고달파서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랬듯이 인생의 고통을 응시하여 그 실체를 구명하기 위해 산사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경우라 하더라도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발심을 하여 새로운 용기를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후자의 경우라 하더라도
승려 생활의 일상 관습에 젖어 종단이나 교단 내부에서의 권력이나 재물을 탐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부류도 없지 않다.
그럭저럭 살기에는 절집이 편리한 장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고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입산 출가한 본래의 목적에서는 아득히 멀어질 뿐이다. 요즘은 정진 수행하여 큰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절집 생활에 안주하여 그것을 직업으로 인식한 나머지 주지 하나라도 얻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여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승려가 직업화되면 불교는 발전하지 못하고 거꾸로 후퇴한다. 우리 불교에 이런 현상이 만연되고 있으니 이 병폐를 먼저 고쳐야 한다.
출가한 목적을 제대로 이루려면 발심부터 달라야 한다. 중이 되어 무슨 특이한 공부를 해 보겠다거나, 종단의 권력을 잡아 보겠다거나, 돈을 많이 벌어 보겠다거나 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었다면 그런 욕망은 산문 밖에서 누더기를 벗듯이 벗어 던지고
오직 깨끗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산문에 들어서는 것이 좋다.
이런 어두운 마음으로 출가하면 자기 한 몸의 재앙에 그치지 않고 중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 그런 사람은 산문 안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요즘은 권세와 겉치레만 쫓는 추세라 신도들이 스님들을 판단하는 기준도 잘못 되었고, 스님들 자신도 뭔가 으스대야 잘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출가 전에 얼마나 좋은 환경과 자격을 갖고 있었는가? 지금 세상과 부교하면 자랑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배경만으로 충분히 여유있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홀로 거렁뱅이 같은 생활을 하셨을까? 자기 스스로 이 헛된 꿈을 깨고 자기 눈을 뜨지 않고는 중생을 교화하고 일깨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 먼 장님이 장님을 데리고 길을 갈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일단 출가한 후에는 이론으로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 실제 행동으로 배워야 한다.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진지한 마음으로 따르고 배우면 차츰 환희심이 생겨난다. 운력과 심부름을 시켜도 단순히 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 까닭이 있어 시키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공부다.
그런 후에 차츰 경전도 보고 기도도 하고 마침내 정진에 힘쓰면 날이 갈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확신이 여물어 간다. 그리고 어느덧 인생이 바뀌게 된다. 세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우주와 인생의 오묘한 진리를 깨달아 혼자 미소짓게 된다.
산중 새벽잠에서 깨어나 목탁 소리와 종소리를 들을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출가한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의 하나다. 하루해가 저물어 먼 상봉우리에 노을질 때 청아한 염불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때를 닦아내면 생명의 밝은 이치가 절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공기 좋은 곳에 가면 몸과 마음이 다 시원해지고, 시끄럽고 번잡한 곳에 가면 귀찮고 우울해지는 것이 상정이다. 산사의 맑고 깊은 분위기, 자연과 생명의 본질에 더 가까이 근접한 분위기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면 믿음은 깊어지고 마음은 금강석처럼 여물어진다.
어느 정도 수련이 되면 스스로 뼈를 깎는 고행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느끼게 된다. 여기서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누가 시켜서 그런 일을 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중도 하차하고 말겠지만 스스로 큰 용기를 내어 택한 길이라면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본격적인 참선 수행에 들어가면 시간과 공간을 모두 잊어버리고 화두를 붙들고 참구하며 삼매에 빠지게 된다. 일체 망념을 버리고 삼매에 빠지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좀더 나아가면 만물의 이치가 훤히 밝아지는 대자유, 대광명의 세계가 열린다.
그 다음에는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진리의 세계가 구축되는데 이것이 안심입명의 경지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보든지 미혹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게 살아가다 보니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무엇인가 깨우침을 주게 되는 것이다.
중생을 돕고 구하는 일은 의도적이기보다는 저절로 이루어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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