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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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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0 23:53:22, 조회 : 94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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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편 대승경전
제 3장 보살의 덕 [寶積經]
2. 진실한 관찰
부처님께서 카샤파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한 보배의 모음[大寶積]인 이 법문에 의해 배우려는 보살은
존재에 대해서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 존재에 대한 올바른 수행인가.
그것은 곧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그러면 또 무엇이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인가.
자아(自我)가 없다고 보는 관찰과 중생이 없다, 목숨 있는 것이 없다,
개인이 없다, 개아(個我)가 없다, 인간이 없다,
인류가 없다고 관찰할 경우 그것을 곧 중도(中道)라 하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라고 한다.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란
물질[色]에 대해서 영원하지도 않고 무사하지도 않다고 보는 관찰이다.
이와 같이 느낌[受]과 생각[想]과 의지작용[行]과 의식[識]에 대해서도
영원하지 않다고 본다.
이것이 중도이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어떤 존재를 가지고 영원한 것이라거나 무상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한쪽에 치우친 극단론이다.
이 영원과 무상 사이의 올바른 것은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며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자아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한쪽에 치우친 극단론이다.
무아(無我)라고 하여도 이것 역시 극단론이다.
이 유아(有我)와 무아 사이의 올바른 것은
역시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며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마음이 실재한다거나 실재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도 위의 경우와 같다.
또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란 다음과 같은 관찰이다.
공(空)한 성질이 있어 그것이 모든 것을 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공한 것이다.
무상(無相)이 있어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무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상(相)이 없는 것이다.
무원(無願)이 있어 그것이 존재를 바람이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바람이 없는 것이다.
무자성(無自性)이 있어 어떤 존재를 자성이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부터 자성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이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寶積經 迦葉品』
*대광명 - 석지연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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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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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법문 감사합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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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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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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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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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_()_나무아미타불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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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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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법문에글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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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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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법문 감사합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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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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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거사님 행복한하루 보내세요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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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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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에 감사드립니다. 두 손 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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