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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가귀감 본문제29편 "성인의 알음알이란 따로 없다"
法空 2014-10-19 18:02:06, 조회 : 1,450, 추천 : 0
然(연)이나 修行之要(수행지요)는 但盡凡情(단진범정)이니
別無聖解(별무성해)니라.

그러나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떨어져 나가는 것) 뿐,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는 없는 것이니라.

단진범정(但盡凡情) : 범부의 탐욕과 번뇌가 다하면 그곳이
                     바로 성인의 경지이고 깨달음의 자리이
                     다.
                     범부와 성인이 다 같은 중생인바,
                     깨달으면 聖人이고 미혹하면 범부다.

◎ 漢文本 註解

病盡藥除(병진약제)하면 還是本人(환시본인)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 언문 주해

범부의 마음과 성인의 알음알이는 모두 망령된 생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이 두 견해를 함께 버려야만 바야흐로 한 성품(佛性불성)에 계합(契合)할 것이다.

('붓다 뉴스'에 연재된 '원순스님'의 '선가귀감 강의' 중 발췌)

중생들은 보통 범부라 하면 범부라는 생각에 빠지고 성인(聖人)이라 하면 성인이란 생각에 빠지는 나쁜 버릇에 길들여져 있어, 앉아 있어도 병이고 서 있어도 병이다.

중생의 이런 병을 고쳐 주려고 부처님께서는 몸소 유(有)와 무(無), 공(空)과 가(假)라는 알기 쉬운 방편을 활용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런 방편조차 공성(空性)임을 알게 하는 중도 법문을 설했다.

범부의 알음알이를 없애주려는 방편으로 성인의 깨달음을 내세우지만, 알음알이가 사라지면 이 알음알이의 상대적 개념인 성인의 깨달음도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성인의 깨달음이라고 해서 거기에 집착한다면 이 또한 변견으로서 중도를 바로 보는 태도가 아니다.

우리 범부는 보통 무명이 깃든 중생의 마음을 쓰고 살기에, 그 '잘못된 알음알이' 속에서는 이 세상 온갖 삶 자체가 다 고통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범부의 알음알이'를 버리고 '성인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의 마음을 쓰고 살아야한다.
중생의 처지에서 저 높은 성인의 깨달음에 들어가려면 '깨달음'을 목표로 삼아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 깨달음이 성취되면 공부하는 사람이 '깨달음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깨달아야 할 대상도 같이 사라진다.

범부의 알음알이가 다 사라질 때 그 자리에 바로 성인의 깨달음이 있는 것이지,
범부의 알음알이를 떠나 따로 성인의 깨달음이란 없다.

이것이 병이 나아 약 쓸 일이 없는 예전 사람처럼 '옛 사람 그대로 곧 부처'인 것이다.

[출처] § 선가귀감 § 본문 제29편

- 나무아미타불_()_
  법공 삼가 합장하여 선가귀감 본문 제29편을 옮겨 올립니다

- 야운 나비꿈 -
- 장사익 낙화 -
법광(法光) [2014-10-19] : ^^ 고맙습니다. _()_
원행화 [2014-10-20] : 감사합니다._()_
대덕심 [2014-10-20] :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십시오._()_
동명(同明) [2014-10-20] :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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