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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가귀감 [본문 제45장] '무심이 곧 열반'
法空 2014-11-14 19:39:07, 조회 : 1,639, 추천 : 0
修道證滅(수도증멸)이 是亦非眞也시역비진야)요
心法本寂(심법본적)이 乃眞滅也(내진멸야)니라
故(고)로 曰(왈) 諸法從本來常自寂滅相(제법종본래상자적멸상)이니라.

도를 닦아 열반(증득)을 얻는다면 이것 또한 참 이치가 아니요,
심법이 본래 고요한 것을 알아야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온갖 것)이 본래부터 늘 그대로 열반이라"하시니라.

◎ 漢文本 註解

眼不自見(안불자견)이니 見眼者(견안자)는 妄也(망야)라
故(고)로 妙首(묘수)는 思量(사량)하고
淨名(정명)은 杜默(두묵)하니라.
以下(이하)는 散擧細行(산거세행)하니라.

《한자》杜(막을 두)

자기 눈은 자기가 볼 수 없는 것인데,
자기 눈을 본다면 거짓이다.
그러므로 '묘수(문수보살)'는 생각으로 헤아리고,
'정명(유마힐)'은 입다문 채 말이 없었느니라.

이 아래는 세세한 행실을 낱낱이 들어 말하기로 한다.

⊙ 언문 주해

시비가 없어서 오직 고요하고 환하도다(적조).
문수보살은 생각으로 헤아렸고 유마는 침묵(두구)하셨다.
-------------
두구(杜口) : 法의 이치나 경지가 매우 깊고 헤아릴 수 없이
             미묘하여 말로 說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입을 막고
             침묵하는 게 옳다는 뜻.

유마힐(維摩詰) :'유마 거사'. 인도 비사리 성에 살면서 보살
                 행업의 수행이 깊어 부처님의 제자들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였다.
                 (유마경) 유마거사가 병상에 있을 때
                 문병 온 부처님 제자들이 '둘이 아닌
                 이치(不二法)'에 대하여 견해를 내는데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이 "말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유마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붓다 뉴스'에 연재된 '원순스님'의 '선가귀감 강의' 중 발췌)

“도를 닦아 열반을 얻는다”는 것에서 말하는 ‘열반’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말하는 열반이다.
깨달음을 얻어 생사 자체가 열반이 되면 모든 차별이 사라져 중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열반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를 않는다.
  
열반을 추구하는 ‘주체’와 열반이라는 ‘객체’가 사라진
이 자리는 본디 고요한 마음으로서 어떤 법에도 집착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 “모든 법은 본디부터 늘 언제나 고요하다”라고 말한다.
모든 집착이 사라져서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이 자리야말로 ‘참된 열반’이다.

“자신의 눈이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생사니 열반이니 하는 개념들은 모두 실체가 없는 인연들이 모여 허깨비처럼 만들어진 것인데

‘깨달음’으로써 이 허깨비들이 사라졌으므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참된 열반'의 성품 그 자체가 평등이어서 생사니 열반이라는 차별로써 열반이라고 말할 것이 없다.

'참된 열반'은 마음과 경계(境界)가 일여(一如)하여 능소(能所: 주체와 객체)로 드러날 것이 없어 이를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 한다.

둘이 아닌 불이법문(不二法門)이란,
대립하는 두 존재가 본질적으로 볼 때는 '둘이 아니라는 것'을 설한 법문이다.
그리고 이 '둘이 아닌 것(不二)'에 의하여 드러나는 것이 곧 '참된 열반'이다. 생사와 열반의 개념이 상대적이니, 생사도 의지하지 않고 열반도 의지하지 않아 양쪽의 집착을 완전히 여의어야 이것이 곧 '참된 열반'이다.

그렇다고 '참된 열반'이라는 것에 또 집착하게 되면,
하나에 대하여 다시 하나 아닌 것이 상대가 되어 둘을 이루니 차별의 변견(邊見)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둘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양쪽을 여의어 양쪽 자체를 찾아볼 수 없고 '참된 열반'이라는 것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열반'에 또 집착하게 되면 결코 진정한 둘이 아닌 것(不二)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늘 말하는 것이지만 양쪽의 집착을 완전히 여의면서 나타나는 열반에 집착하면 그것은 열반을 모르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실로 양쪽의 집착을 여의면 불가득공(不可得空)이라서 열반이라는 것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생들을 위해 억지로 할 수 없이 '공(空)'이요 '중도(中道)'며 '참된 열반(涅槃)'이라고 이름하는 것이지 그것들 자체는 실제로 공(空)이어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다.
  
생사를 떠나서 열반이 없으며 도를 닦아 열반을 얻는 것도 아니다.
생사와 열반 양변의 집착을 떠난 중도 자리, 곧 부처님 마음자리에 들어가 마음이 본디 고요한 것,
이것이야말로 참된 열반이다.

[출처] § 선가귀감 § 본문 제 45장

- 나무 관세음보살_()_
  거룩한 삼보에 귀명 합니다
  법공 합장하여 선가귀감 본문 제45장을 옮겨 올리오며

  11월도 중반을 달려가면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있습니다
  매일 선가귀감을 해설하여 주시는 성종스님.
  그리고 아침 방송을 애청하시는 전국의 법우님들 건안 하시기
  를 발원 기도 올립니다.
  붓다로 살아요.
  법공 두손 모아 합장 합니다.

- 나무대성인로왕보살 - 권미희
- 구도(求道)의 길 - 심진스님
동명(同明) [2014-11-14] : 오늘은 열반에 대한공부이군요 잘 배워 갑니다._()_
법광(法光) [2014-11-15] : 양변을 떠난 중도자리. 감사합니다. _()_
대덕심 [2014-11-15] : 귀한말씀 감사합니다.성불하십시오._()_
보성(寶聖) [2014-11-16] : _()_
원행화 [2014-11-18] :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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