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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가귀감 [본문 제51장] '참다운 예불은 자기의 아집을 항복 받는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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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3 20:17:32, 조회 : 1,51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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達摩(달마)가 云(운) 禮拜(예배)는 禮者敬也(예자경야)요
拜者伏也(배자복야)니 禮拜者(예배자)는 敬也(경야)요
伏也(복야)니 恭敬眞性(공경진성)하고 屈伏無明(굴복무명)이니
又云(우운) 身口意(신구의)가 淸淨(청정)이라 하시니라.
달마조사가 이르되, "예배의 예는 공경함이고, 배는 굴복함이다"
예배는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다운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또 이르되,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 漢文本 註解
身口意(신구의)가 淸淨(청정)하면 則佛出世(즉불출세)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나타나신 것이니라.
⊙ 언문 주해
예배는 自性의 부처께 귀의하는 것이니,
또한 망(妄)을 돌이켜 진(眞)으로 향하는 것이다.
('붓다 뉴스'에 연재된 '원순스님'의 '선가귀감 강의' 중 발췌)
삼보는 불교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보물로서,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
그 진리에서 나오는 가르침으로서 '법'
그 가르침을 따르는 ‘스님들’을 말하는데
보통 불(佛) 법(法) 승(僧) 삼보라고 한다.
절에서 드리는 예불은 이 삼보를 공경하는 뜻을 드러내고자 두 손 모아 자신을 낮추어 절하는 의식이니 예배라고도 한다.
부처님이나 조사스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그분들이 무명을 끊고 자신의 성품을 보아 참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우리 처지에서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귀의해야 할 곳이며 공손히 받들어서 잘 모셔야 할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는 그 절 속에 자신을 낮추는 마음과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이 들어있어야 한다.
자신을 낮추는 마음은 ‘나’라는 생각으로 시비분별을 일으켰던 마음을 잠재우면 마침내 시비분별의 근원인 미세한 무명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요,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이 담긴 절로써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면 자신의 참 성품에 나아갈 수 있다.
자만심으로 예배가 불손했던 훗날의 제자인 '법달'에게 '육조 대사'가 게송으로 가르쳤다.
'법달'은 '육조 스님'의 가르침에 크게 잘못을 깨달아 참회하며 아만(我慢)을 떨치고 나서야 법화경의 참뜻을 깨달았다.
禮本折慢幢(예본절만당) 頭奚不至地(두해불지지)
有我罪卽生(유아죄즉생) 忘功福無比(망공복무비)
"절은 본디 아만을 꺾는 것인데,
어찌하여 머리를 숙이지 않는가 잘났다는 그 생각이 죄를 만드니,
'나' 낮출 때 생겨나는 그 복이 으뜸이로세.
'나'라는 생각이 떨어져야 시비 분별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니 아만(我慢)을 꺾고 하심(下心)을 하는 데에는 절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절의 종류는 일곱 가지나 된다.
첫 번째 법달 스님처럼 '나 잘났다는 절'이니
공손하지 못한 절이다.
이런 절은 엎드려 절을 해도 불편 한 절이 되어 옆에서 보기에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심한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명예를 구하는 절'이니,
교만한 마음을 숨기고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도모하고자 절을 하는 것이다.
요즈음 이름난 명사들처럼 무엇 좀 해보려고 아무 관련도 없는 행사에 일부러 참석하여 절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의 눈 도장을 찍어 뒷날의 이익과 명예를 도모하려는 것이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세 번째는 '몸과 마음이 공손한 절'이니,
절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공손하여 정중하고 깍듯하게 올리는 절이다.
절을 하는 사람과 절을 받는 사람이 즐거우니 곁에서 보기에도 아름다운 절이다.
네 번째는 '지혜로워 맑고 깨끗한 절'이니,
절을 하는 사람이 절 자체가 수행임을 지혜롭게 알고 열심히 절을 하여 몸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닦는 것이다.
절을 하고 난 뒤에는 세상을 보는 안목도 달라질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제껏 살아왔던 모습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두루 법계에 들어가는 절'이니,
한 번의 절로써 두루 법계에 계시는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이다.
절을 계속 하다보면 절을 하는 중생과 절을 받는 부처님의 마음이 서로 통하여 법계 이치를 통달하게 되는데
이 때는 한 분의 부처님께 절을 해도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께 올리는 절이 된다.
여섯 번째는 '올바른 통찰로 정성 들여 하는 절'이니,
이 절이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께 올리는 절임을 깊이 깨닫고 지극 정성을 들여 하는 절이다.
절을 통해 중생과 부처의 경계가 사라짐을 보면서 자신의 성품에 있는 부처님께 하는 절이다.
일곱 번째는 '실상 그 자체가 평등한 절'이니,
몸과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 절하는 사람의 실상이 '텅 빈 충만'이 되어 모든 것이 평등하여 중생이 부처이고 부처가 중생이 되는 절이다.
모든 차별이 사라지는 절로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절이니 절 자체가 부처님이요 깨달음이 된다.
'절'이란 자신을 낮추는 마음과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이 어우러져야 한다.
자신을 낮추어야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나고,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야 몸과 마음이 맑고 깨끗해진다.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고,
'나'라는 생각이 사라질 때 나를 만들어내는 무명도 없어진다.
무명조차 사라지면 참 성품이 드러나니 이 자리가 바로 부처님 세상이다.
바꾸어 말하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정성껏 드리는 절 한 번에 우리도 바로 그 자리에서 '텅 빈 충만'이 되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선가귀감 § 본문 제51장
- 거룩한 삼보에 귀명 합니다
법공 합장하오며 한달만에 불심사 부처님을 친견하옵고
귀가하여 만심환희하여 선기귀감 본문 제51장을 옮겨 올립
니다.
붓다로 살아요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시방삼세 불보살 - 범능스님
기도하세요 - 한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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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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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거사님 감사합니다. 잘 살펴보고 갑니다.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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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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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다하여 하심하는 마음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_()_법공거사님! 감사합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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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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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법문 감사합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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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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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낮추는 삶 불심으로 하심하는 마음을 길러야겠습니다.법공거사님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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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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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법문 감사합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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