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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가귀감 본문 제73장 [들뜨지 말고 기죽지 말라]
法空 2015-01-23 19:09:08, 조회 : 1,470, 추천 : 0
凡人(범인)이 臨命終時(임명종시)에 但觀五蘊皆空(단관오온개공)하여 四大無我(사대무아)하고
眞心(진심)은 無相(무상)하여 不去不來(말법불래)어다.
生時(생시)에 性亦不生(성역불생)하며 死時(사시)에 性亦不去(성역불거)라
湛然圓寂(단연원적)하여 心境(심경)이 一如(일여)라
但能如是(단능여시)하여 直下頓了(직하돈료)하면
不爲三世所拘繫(불위삼세소구계)니 便是出世自由人也(변시출세자우인야)라.

《한자》命(목숨 명. 명령)
        亦(역시, 또한 역)
        湛(맑을 담)
        拘(잡힐 구)
        繫(맬, 얽다 계)

누구나 임종할 때에는 다만 오온(五蘊 : 색수상행식)이
다 빈 것이어서 사대(四大 : 지수화풍)의 이 몸에는
나(我)라고 할 것이 없으며,
참 마음은 모양이 없어서,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다.
날 때에도 성품은 난 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가는 것이 아닌 까닭에
지극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오직 이와 같이 단박 깨치고 보면
삼세(三世)와 인과에 얽매이거나 끌리지 않게 될 것이니,
그런 이는 곧 세상에서 뛰어난 자유인이다.

若見諸佛(약견제불)이라도 無心隨去(무심수거)하고
若見地獄(약견지옥)이라도 無心怖畏(무심포외)하여
但自無心(단자무심)하면 同於法界(동어법계)니
此則是要節也(차즉시요정야)라
然則平常(연즉평상)은 是因(시인)이요
臨終(임종)은 是果(시과)라 須着眼看(수착안간)하라.

《한자》 怖(두려워할 포)
         須(모름지기 수)

만약 부처님을 보아도 따라 갈 마음이 없고,
지옥을 보더라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
다만 무심하게 되면 법계(法界)와 같이될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요긴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꽃을 가꾸어가다가
임종할 때에 열매가 맺게 되는 것이니,
도인은 모름지기 이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법계(法界) : ①온갖 분별을 여윈 실상의 세계. 일진법계
             ②우주만유의 존재전부를 '법'이라 하고
               그것이 존재한 곳을 경계라고 한다.

◎ 漢文本 註解

파死老年(파사노년)에 親釋迦(친석가)로다.

《한자》파(두려워할 파)

죽기 싫은 늘그막에야 부처님께 나아갈 것인가.

송나라 '소강절(1011∼1077 : 안락선생)'의 시
(求名少日慕宣聖 구명소일모선성 파死老年親釋迦 파사노년친석가)

"명리를 구할 젊을 적엔 공자님을 따르다가,
죽기 싫은 늘그막에야 부처님께 나아가네.

◈ 頌

好向此時明自己(호항차사명자기)하라
百年光影(매년광영)이 轉頭非(전두비)로다.

《한자》向(대접받을, 누릴 향. 향할)
        轉頭(전두 : 고개를 돌림)

이 좋은 시절 만났을 때 부디 자기를 밝힐 것이니,
백년 세월도 순식간에 그르치리라.

⊙ 언문 주해
  
이상의 두 구절은 특별히 종사가 무심(無心)으로
道에 합하는 문을 열고, 교(敎) 중에 염불로 생로(生路)를
구하는 방편문을 막은 것이다.

그러나 근기가 제각기 다르고 뜻과 원(願)이 또한 다르니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은 평소에 각각 그 편의함을 따라
힘써서 임종 때에 의심하고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말기 바란다.



('붓다 뉴스'에 연재된 '원순스님'의 '선가귀감 강의' 중 발췌)

사람들이 세상의 부와 명예를 다 가졌다고 해도
중생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헛된 삶이니,
목숨을 거둘 때 금생(今生)의 나쁜 업만 지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어리석은 복(福)을 짓는 것은 삼생(三生)의
원수나 마찬가지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무엇 때문에 삼생(三生)의 원수라고 말씀하셨는가?

첫 번째 생(生)에서 어리석은 복만 짓느라고 견성(見性)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생에서는 전생에 지어 놓은 어리석은 복을 받아쓴다고 공부를 하지 않아 그저 업(業)만 짓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생에서는 전생에 어리석은 복만 받아쓰고 수행을 하지 않았기에 몸을 떠날 때 쏜살같이 지옥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받기 어렵고 부처님의 법은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생에 이 몸을 제도할 수 있겠는가?

'오온(五蘊)'과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중생의 몸은 인연의 조건이 갖추어져 이루어진 것으로서 실체가 없는 것인데
중생들은 이것에 집착하여 온갖 번뇌를 일으킨다.
이 집착이 중생을 육도(六道)에 윤회하게 하는 '생사의 뿌리'이다.
덧없이 무너질 몸에 집착하게 함으로써 이것들이 마구니가 되니
중생들의 온갖 괴로움이 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음 닦는 공부는 헛됨이 없다.
마음을 다하여 수행한다면 설사 금생에 알지 못하더라도
반야의 씨앗을 깊이 심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목숨을 마칠 때도 업의 분별에 끌려
그 어떤 악취(惡趣)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몸을 바꾸어서 다시 태어날 때에도 무명번뇌가 나를 어둡게 할 수 없다.

악취(惡趣) : 악업을 지어서 죽은 뒤에 나는 고통의 세계 :
             지옥, 아귀, 축생, 수라

그러므로 자신의 공부를 잘 살피고 살펴야 한다.
무상한 세월이 빠르기에 생사를 밝히는 일이 더 큰 것이다.
몸과 마음이 튼튼할 때에 일찍이 이 공부에 힘을 쓰기 시작한다면 늙어서 시작하는 것보다도 공부의 힘이 훨씬 더 뛰어날 것이라고 서산 스님은 말한다.

중생의 삶이란 부처님의 품을 벗어난 나그네 인생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중생의 죽음이란 나그네 인생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영원한 빛이요 생명인 아미타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이 부처님을 보기 위해서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五蘊)'과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중생의 몸과 마음 자체가 인연의 조건이 갖추어져 이루어진
것으로서 실체가 없는 '공(空)'임을 통찰해야 한다.


[출처] § 선가귀감 § 본문 제73장
대덕심 [2015-01-24] : 법공거사님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운암(雲庵) [2015-01-24] : 법공거사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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