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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조단경 [육조대사법보단경 약서]
法空 2015-02-14 20:40:02, 조회 : 1,284, 추천 : 0
대사의 이름은 혜능이다.
아버지는 노씨로서 휘는 행도이고 어머니는 이씨이다.
대사는 당나라 정관12년 무술년 2월 8일 자시에 태어나셨는데, 그 때에 백호의 광명이 허공에 떠오르고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새벽녘에 범상치 않은 두 스님이 찾아와서 대사의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밤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가하면
위에 자는 혜로, 아래 자는 능으로 하십시오.” 하였다.
아버지가“어찌하여 혜능이라 합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이 말씀하기를 “<혜>라는 것은 법으로써
중생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이고,
<능>이라하는 것은 부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였으며 말을 마치고 나갔는데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대사가 젖을 먹지 않았는데 밤이 되면 신인이 와서 감로를
먹여 주었다.  

자라나서 나이가 스물넷이 되었을 때 경 읽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아 황매로 가서 인가를 구하였더니,
오조가 법기로 여기시어 가사와 법을 전하시며
조사의 자리를 잇게 하시니,
때는 용삭 원년 신유년(당 고종 12년) 이었다.

남으로 되돌아가 은둔하신지 16년이 되는 의봉 원년 병자년
정월 8일에 인종법사와 만났는데
인종이 대사의 종지를 깨달아 모든 면에서
뜻이 서로 잘 맞으므로 이달 15일에 사부 대중을 널리 모아서 대사의 머리를 깎고 2월 8일에 여러 이름 있는
대덕스님들을 모아서 구족계를 주시었다.

서경의 지광율사는 수계사가 되고 소주의 혜정율사는 갈마사가 되고
형주의 통응율사는 교수사가 되고 중천축의 기다라율사는
설계사가 되고 서국의 밀다삼장은 증계사(證戒師)가 되었다.

그 계단은 송나라 때의 구나발다라 삼장이 처음 세우실 때
비를 세우며 이르시길 "후일에 육신보살이 여기에서 계를 받을 것이다." 하였으며
또 양나라 천감 원년(서기502년)에 지약삼장이 서축국(서인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와서
그 땅에서 가져온 보리수 한 그루를 이 단가에 심으시며
미리 예언하기를"170년 뒤에 육신보살이 이 나무 아래에서
가장 훌륭한 법을 열고 연설하여 한량없는 대중을 제도할 것인데
참으로 부처님의 심인을 전하는 법의 주인이시다."하시더니,

대사가 이곳에 이르러서 비로소 머리를 깎고 계를 받으며
또 사부대중과 더불어 단전(깨달음은 언어나 문자로 전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밖에 전할 수 없다는 뜻)의 법지를 열어 보이시니
한 결 같이 예전에 예언하신 바와 꼭 같았다.

다음해 봄에 대사가 대중을 하직하고 보림사로 돌아가시니
인종화상이 재가자 및 출가자 천여명과 함께 전송하였다.

바로 조계산으로 가셨는데 그 때 형주의 통응율사가
학인 수백 명과 함께 대사를 의지하여 머물렀다.

대사가 조계산의 보림사에 이르러 보니 당우가 너무 좁아서
대중을 수용하기엔 부족함을 보시고는 넓히시려고,
마을 사람인 진아선을 찾아가 만나 말씀하시길 “노승이 단월에게 이르러 좌구 깔 땅을 구하고자 하는데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시니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좌구가 얼마나 넓습니까?” 하므로
조사가 좌구(앉거나 누울 때 까는 방석)를 내어 보이시자 진아선이 허락하므로 조사가 좌구를 한번 펴니
조계의 사방경계를 다 덮었는데 사천왕이 몸을 나타내어 사방에 앉아 눌렀다.

지금 사찰 경내에 있는 천왕령은 이때의 일로 붙여진 이름이다.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법력이 크고 넓으신 것을 알겠습니다마는 저의 고조의 분묘가 이 땅에 있으니 후일 사찰을 지으시더라도
그대로 남겨두실 것을 바라며 나머지는 원 대로 모두 드리니
영원히 절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땅은 생룡(살아있는 용)과 백상(흰 코끼리)이 뻗어 내린 맥이므로,
높고 낮은 데로 지을지언정 땅을 깎아 평평하게 하여 짓지는 마십시오.” 하였기에
뒤에 절을 지을 때 한 결 같이 그 말대로 하였다.

대사가 경내를 다니시다가 산수가 뛰어난 곳에 번번이 머물러 쉬시다가 13개의 난야(수행처소)를 세우셨는데
오늘날 화과원이라는 이름으로 절 문에 써 놓은 곳이다.

이 보림 도량은 역시 이보다 앞서 서국(인도)의 지약삼장이 남해로부터 와서 조계의 어귀를 지날 때에,
물을 한 모금 움켜 마시고 향기로운 맛을 이상히 여기어 그 제자에게 일러 말씀하시길 "이 물이 서천의 물과 다르지 않으니 시냇물 저 위에는 반드시 뛰어난 땅이 있을 것이고 도량을 세울만할 것이니라."하시며

흐르는 물을 따라가 그 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산과 물이 감아 돌고 산봉우리가 매우 빼어났으므로
감탄을 하며 말씀하시길 "완연히 서천의 보림과 같구나."하시며
조후촌의 사람들에게 "이 산에 절을 하나 지으십시오.
170년 뒤에 마땅히 위없는 법을 이곳에서 연설하고 교화하여 도를 얻는 자가 수풀과 같을 것이니 응당 보림이라 이름 하시오." 하셨다.

그때 소주 목사인 후경준이 그 말씀을 표로 갖추어 왕에게 상주하니 임금이 그 청을 옳게 여겨서 <보림>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시어 절을 지었는데 양나라 천감삼년(서기503년)에 낙성을 하였다.

절의 전각 앞에 못이 하나 있었는데, 용이 항상 그 속에서 출몰하여
숲의 나무를 흔들어 꺾어 놓곤 하였는데
어느 날은 아주 큰 형상으로 나타났기에,
물결이 솟아오르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어
대중들이 모두 두려워하므로 대사가 꾸짖으시며, “네가 큰 몸으로만 나타날 수 있지 작은 몸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모양이구나.

만약 신령스런 용이라면 마땅히 변화하여 작은 몸을 크게 나타내고 큰 몸을 작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니라.” 하시니
그 용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조금 있으니 다시 작은 몸으로 나타나 못 위에 뛰어 나오므로,

대사가 발우를 펴 보이시면서 “네가 감히 노승의 발우 속에는 들지 못할 것이다.” 하시니
용이 나르다시피 헤엄쳐 앞에 이르므로
대사가 발우에 담으시니 용이 움직이지 못하였다.

대사가 발우를 법당에 가지고 가서 용을 위하여 설법을 하시니 용이 마침내 뼈를 벗고 사라졌다.

그 뼈의 길이가 칠촌이나 되고 머리와 꼬리와 뿔과 발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이 절에 전해져 오고 있다.

대사가 후에 흙과 돌로 그 못을 메우셨는데
지금의 전각 앞 좌측에 철탑으로 누른 곳이 바로 그 곳이다.
-끝-

[출처] - 육조대사법보단경 약서 -

- 거룩한 삼보에 귀명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법공 합장저두하여 감사드리며
  건안을 기원 드립니다
  붓다로살으소서

오! 부처님 - 가야금병창(자진모리)
芙蓉(부용)거사 [2015-02-15] : 부처님의 법을 깨치는 데는 문자는 중요하지않나봅니다...당대의 선지식이신 수월큰스님이 생각납니다..평생을 낮에는 짚신을 삼고...밤에는 선정에 들었답니다..우리 곁에 오셨던 선지식이시여...가신곳을 일려주소소.....마하반야밀....
대덕심 [2015-02-16] :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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