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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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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8 18:44:59, 조회 : 1,106,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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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복(福) 받기를 바라고.
그래서 복을 빈다.
재복(財福)도 빌고
무병장수도 빌고
천당에 가고 극락에 가기를 빈다.
그렇게
복을 바라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이니
그것을 두고 시비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복을 빈다고 복이 오는 것일까?
흔히
그런 이야기를 한다.
복이 담길 그릇이 되어야
복이 와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그릇이 안 된다면
복이 온다한들
담을 수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귀에 담기 어려운 따가운 질책이다.
달리 말하면,
복(福)을 받느냐
그렇지 않고
화(禍)를 입느냐 하는 것은
인과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란 것을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복을 지어라’고 말한다.
요컨대
복을 받기 위해서는
복을 받을만한
착한 일을 하라는 것일 터이다.
물론
착한 일을 해서 복을 받는 것은 좋다.
그러나
만약
복을 받기 위해서 착한 일을 한다면
그게 얼마나 착할 수 있을까?
복이라는
명확한 대가성을 향하고 있는,
이해관계가 계산되어 있는 바에야
착한 일이란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일까?
계산이 치밀하면 할수록
그리고
대가성을 요구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착한 것과는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착한 일’을 해서 복을 받는다는
계산은 맞아 들어가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게 보면
복을 비는’ 것이나
복을 짓는다’는 것의
질적 차이는 없는 셈이다.
오십보 백보다.
뒤집어 말하면
대가성을 요하지 않을수록
그리고
복에 대한
계산이 없을수록 착한 것이며
복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불교에서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복덕성(福德性)은
그 이름이 복덕일 뿐
복덕이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지 모른다......옮긴글.
♬♪ 사박걸음으로 가오리다 / 하윤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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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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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법우님 감사합니다. 삼월에 첫주 행복한 한달이 되세요,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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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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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심,선배 法友님 을미년 한새동안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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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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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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