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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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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1 20:04:26, 조회 : 1,276,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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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며, 저희들은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길,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니, 이 이름으로 너희들이 받들어 지닐지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부처님이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설하신 법이 있겠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아무것도 설하신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쳔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먼지가 많다고 하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여래께서 설하신 모든 먼지는 먼지가 아니요 그 이름이 먼지이ㅣ며, 여래가 설하신 세계도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히 삼십이 상으로 여래를 볼수 있지 않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가히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삼십이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곧 상이 아니오라 그 이름이 삼십이 상입니다.
수보리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목숨을 보시하였더라도,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네 글귀오 된 한 게송만이라도 받아 지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러 준다면 이복이 앞의 복보다 매우 많으니라..
-------------------------------------------법다이 받아지님.
해설
여법수지분은 금강경의 가르침을 부처님 뜻에 어긋나지 않게 법답게 받아 지니라는 내용입니다.
부처님 법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상의 가르침이며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영원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이 지나 언제 어느 곳에 있다 하더라도 그 생명력은 절대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과 진리를 벗삼아 법답게 말하고 법답게 행동하면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여여하고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법에서 이탈하여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면 그것이 씨가 되어 괴로움을 잉태하게 됩니다.
나라 법을 어기면 감옥에 가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부처님 법을 어기면 세세생생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집착을 소멸하게 하시려고 반야바라밀도, 부처님이 설하신 법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나아가서는 부처님의 모습까지도 모두 부정하십니다.
껍데기에 쏠려 있는 마음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신 것입니다.
어떤 모습에도 머물지 않고 허공처럼 여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수행법에 대한 말씀이 시작됩니다.
수보리는 이 경의 이름이 무엇이며 이 경전을 지니는 사람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는 이름으로 받들어 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금강반야에 의지해서 깨달음에 이르라는 말씀입니다.
금강반야바라밀은 더없이 높은 부처님의 지혜에 이르기 위한 대승 보살의 최고가는 수행을 말합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이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경전의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전의 제목이 그 내용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강석은 세상에서 가장 견고하며 그 빛 또한 아름다워 반야의 지혜에 비유됩니다.
이 반야 지혜는 능히 모든 번뇌를 날카롭게 끊어내고 세상의 어둠을 깨뜨려 우리의 어리석은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 줍니다.
깨달음의 세계를 말로 설명하기 위해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최고의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그 이름이 실체는 아닙니다.문자에 끄달리지 않는 마음의 세계, 진리의 세계가 비(非)의 세계입니다.
반야바라밀의 세계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의 세계이므로 도저히 말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 "아니다 아니다" 하시면서 단지 이름뿐임을 강조하십니다.
반야바라밀은 문자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문자에 얽매어 진정한 뜻을 훼손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금강반야바라밀도 단지 이름을 반야바라밀이라고 붙였을 뿐이므로
그 이름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꽃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꽃을 부르기 위해서 붙였을 뿐 그 이름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꽃이라고 부르지만 나라마다 그 이름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말로도 꽃의 실체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 영화 내용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지 못하고,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아무리 맛과 모양을 설명해도 그 맛을 모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반야바라밀은 문자나 말로 설명되어지는 세계가 아닙니다.
직접 실천하여 체득해 보아야 진정한 반야바라밀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 설법을 하시면서 "내가 법을 설한 바가 있느냐?" 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반야의 세계는 말로나 생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문자로 기록할 수는 더욱 없는 것입니다.
금강 반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초월의 세계입니다.
부처님께서 한 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시는 것은 어떤 고정된 실체법을 말씀한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셨다고 하면 중생들은 또 그 법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컵이라고 하여 꼭 물을 마셔야 되는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컵에 물을 담으면 물잔이 되고,커피를 담으면 커피잔이 될 수 있고,
예쁜 모자이크를 하면 장식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산에 오르는 길도 정해진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길만 있는 줄 알지만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면 여러 갈래 길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고정불변한 법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무조건 이 법만이 옳다고 하지도 않으신 것입니다.
불법은 대지와 같아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양극단의 논리를 떠나 모두를 아우르는 중도의 가르침입니다.
나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기에 물과 젖처럼 녹아들어 융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참된 법은 번뇌망상을 떠나 말을 넘어선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설해도 설한 바가 없고 그 이름이 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장 작은 미진에서부터 광대무변한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은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고 인연에 의해 소멸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티끌이 아무리 많다 해도 모두 허상이고 삼천대천세계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것 또한 허상입니다.
이 세상은 마음의 그림자일 뿐이므로 물질을 물질로 보지 말고 그 이면에 있는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물질세계가 이루어졌음을 아는 것이 진정으로 티끌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많고 적음을 물어본 것도 물질이 많은가 적은가 물어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세계가 얼마나 열렸느냐 하는 것을 물어보신 것입니다.
어떤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라 할 뿐이므로 티끌과 같은 세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느냐고 물으시니 수보리는 삼십이상의 거룩한 모습으로 여래의 실상을 볼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부처님의 삼십이상은 억만 겁을 닦아 얻은 거룩한 상호이지만
눈에 보이는 육신은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언젠가는 사라질 허무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리 중생 교화를 위해 삼십이상을 갖추시고 잠시 몸으로 나투셨을 뿐 그 몸을 실체라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은 형상이나 이름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그 겉모습에 집착할 것을 우려하여 부처님의 형상까지도 실체가 아니라고 부정하시는 것입니다.
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만 진리로서의 부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아끼고 애지중지하는 것이 묵숨입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목숨을 항하의 모래 수만큼이나 많이 보시를 했다면 그 공덕은 얼마나 크겟습니까?
그러나 그처럼 큰 공덕도 금강경 사구게를 깊이 이해하여 남을 위해 설하는 공덕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생에 걸쳐 목숨을 바쳐 보시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은 부처님의 말씀이 듬뿍 쌓인 보고입니다.
그 안에는 모든 중생들을 성불에 이르게 하고 온 세상을 불국토로 장엄할 수 있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세간의 모든 물질은 세월의 흐름 따라 파괴되고 없어지지만 부처님 말씀을 듣고 펼친 그 공덕은 영원무궁합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나와 남이 함께 집착을 떨쳐 버리고
능히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 선근공덕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전달되어지면서 마르고 닳을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하의 모래 숫자만큼의 목숨으로 보시를 하는 것보다 금강경 가운데 사구게만이라도
사람들에게 설하는 공덕이 더 크다고 하신 것입니다. /옮김
신청곡: 갓바위 / 김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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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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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법수지분 /법답게 받아 지니라는 부처님 말씀을 풀이해 올려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열심히 스님 설명 들으면서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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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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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곡; 내마음 보살되어/이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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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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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스님의 설명으로 다시 공부하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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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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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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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읽고 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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