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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금강경 金剛經 이상적멸분
常不輕菩薩 2015-06-23 21:45:09, 조회 : 1,594, 추천 : 0
그 때에 수보리가 이 경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깊이 잘 이해하고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렇게 심히 깊은 경전을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예로부터 오면서 얻은 지혜의 눈으로는 일찍이 이와 같은 경을 얻어 듣지 못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의 말씀을 듣고 믿는 마음이 청정하면 곧 바로 실상을 알것이니, 이 사람이 마땅히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것임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은 상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그 이름을 실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 듣고 그대로 믿고 알아 받아 지니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만약 이 다음 세상 후 오백세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얻어 듣고 그대로 믿고 알아 받아 지니게 되면 그 사람이 곧 제일 희유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생각도 없고 사람이라는 생각도 없고 중생이라는 생각도 없고 오래산다는 생각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생각은 곧 상이 아니요, 사람이다, 중생이다, 오래산다는 생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모든 상을 여윈 것을 부처님이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길,
그렇다, 그렇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서도 놀라지도 않으며, 겁내지도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이 사람은 참으로 희유한 사람인줄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께서 설하시는 제일바라밀이란 제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인욕바라밀도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인욕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을 인욕바라밀이라 하시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을 갈기 갈기 찢김을 당할때에도 나라는 생각도 없었고 사람이라는 생각도 없었고 중생이라는 생각도 없었고오래산다는 생각도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지난날 갈기갈기 사지가 찢길적에  만약 나라는 생각, 사람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산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마땅히 성내고 원망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또 생각하니 과거 오백세에 인욕선인이 되었을 때에도 나라는 생각 이 없고 사람이라는 생각도 없고, 중생이라는 생각도 없고 오래산다는 생각도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모든 상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 것이니, 마땅히 형상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소리 냄새 맛 닿음 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아야 되며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낼 것이니 만약 마음에 머무름이 있으면 곧 머무름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보살은 마땅히 마음을 형상에 머므르지 말고 보시하라 하셨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보시를 해야 할것이니라. 여래께서 설하신 일체 모든 상은 곧 상이 아니며 또한 온갖 중생이라 말씀하신 것도 곧 중생이 아니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참된 말만 하는이며, 실다운 말만 하는 이며, 여여한 말만 하는이며, 속이지 않는 말만 하는 이며,다르지 아니한 말만 하는 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서 보시를 한다면, 어두운 곳에 들어가는 사람이 곧 아무것도 볼수 없는 것과 같고, 만일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 눈 밝은 사람이 햇빛 아래서 가지가지의 사물을 보는것과 같느니라. 수보리야, 미래 세상에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곧 여래께서 부처님의 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알고 다 보나니 한량없고 가이 없느 공덕을 모두 다 성취하게 되느니라..
------------------------------------------상을 떠나 정멸에 듦.


해설


상을 여의고 본질을 꿰뚫어 보면 바로 그 자리에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고요한 적멸의 자리가 있습니다.
적멸은 열반이라는 뜻으로 지고의 안락과 무한한 평안이 있는 자리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번뇌 망상과 업장을 녹여 버리면 내릴수록 평안의 극치 즉 적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계가 바로 부처님이 깨달으신 이상적멸의 경계입니다.

상이라고 하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번뇌들을
총칭하여 얘기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이 뒤섞여서 번뇌와 고통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상은 문자 그대로 장벽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장벽을 다 걷어 내어 허공같이 비우면 상대방과 하나 되고
이 우주와 하나가 되어 한없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좋고 나쁜 마음을 내려놓고,옳고 그른 분별심을 내려놓으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부처님을 만나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호지묘력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부처의 길은 바로 적멸의 길입니다.
오대산 상원사,설악산 봉정암에 가면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그 기도 도량을 찾아서 힘들게 올라가는 이유는 내 마음 가운데 있는 번뇌망상을 소멸시키고
부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입니다. 내 마음 또한 적멸보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수보리는 어떠한 상에도 사로잡히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확연히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랜 수행을 통해 혜안을 얻은 수보리이지만 일찍이 들은 바 없는 이 진리의 가르침에 참회와
기쁨이 교차되어 부처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여 오묘 불가사의한 진리를 터득하게 되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입니다.그 뜻을 깊이 이해해서 막힌 가슴이 뚫어지듯 뜨겁게 복받쳐 오르는
체루비읍의 경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은 인간의 모든 감정들을 쓸어내 주는 묘한 마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서글프고 괴롭더라도 실컷 울고 나면 그 감정이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눈물은 모든 정서를 원점으로 돌려주는 힘이 있다' 고 하였습니다.
감정이 극도로 격양되어 심장이 터질 듯 하다가도 눈물을 쏟고 나면 안정을 찾게 된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도 밝혀진 바 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상이 부숴져 마음 깊은 곳에 참회의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참회하는 마음이 업장을 녹여 자기도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눈물은 모든 번뇌망상을 쓸어 내고 마음 가운데 오염된 부분을 정화시켜 주는 힘이 있습니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 마음에 쌓인 장벽이 허물어져 업장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많이 끌어 들여 창고에 쌓아두고 열쇠를 채워 단단히 보관하면 잘 살게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세속의 공부는 끌어 들이는 법을 가르치는데 반해 부처님은 장벽도 허물고
내것을 모두 버리고 비우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이런 부처님 말씀을 믿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처님은 금강경의 가르침을 청정한 마음으로 듣고 투철하게 믿으면 곧바로 실상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서 이건 옳고 저건 틀리다는 상을 내는 것은 마음 가운데 편견의 벽을 쌓는 것이고
업장을 두껍게 쌓는 일이 됩니다.일체의 분별하는 마음을 끊어 신심이 청정한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부처님 세계는 완전하여 얻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그래서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상은 일체상을 떠나 청정한 마음을 밑바탕으로 해서 형성되는 진리의 세계입니다.
상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허공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와 빈 자리를 채워 줍니다.
허공은 바로 부처님의 몸이므로 부처님의 가호지묘력이 가득히 채워지는 것입니다.
내보내면 내보낸 만큼 채워지는 무서운 도리를 꼭 아셔야 합니다.

실상의 세계, 부처님 세계는 상을 떠난 마음의 세계입니다.
이런 실상을 깨닫는다고 해서 실상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다운 실상의 자리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선 초월의 경계입니다.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 이름을 실상이라고 이름 붙여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조그만 헝겊을 꿰매어 잇고 또 이으면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보자기가 됩니다.
이렇듯 꿰맴의 마음은 화합의 마음이며, 포용의 마음입니다.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커지므로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져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을 떠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한대한 발전을 의미합니다.

이태리의 재벌인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혼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집안입니다.
그 가문을 통 털어 이혼하지 않은 여인은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잡지 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어떻게 남편과 그토록 오랫동안 해로할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하루의 모든 스케줄을 남편에 맞추어 평생 그림자처럼 살았다" 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볼일이 있더라도 남편의 전화가 오면 당장 모든 것을 중지하고 다음으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남편과의 사이에 어떠한 간격도 두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장벽이 없는 마음이므로 무한한 복이 거기에 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보리는 바로 곁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직접 설법을 들어왔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을 믿고 지니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후오백세의 중생들은 경전만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신해수지(信解受持)하는 일이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경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한다면
참으로 희유한 사람이어서 큰 공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아집을 깨라는 가르침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상으로부터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경지에서 보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은 본래부터 없는 것입니다.
다만 중생들이 상을 일으키고 집착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고 마음에 잡히는 모든 상을 떠나는 것이 바로 부처의 경계입니다.

불교에서 가장 원천적으로 표방하는 것이 바로 무아상입니다.
우리가 상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실체를 잘 모르는 무명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나'라는 이 몸도 화장장의 한 줄기 연기로 사라져 버릴 것이고,
망우리 공동묘지의 한 줌의 흙이 될 뿐입니다.
이러한 허망한 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실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껍데기는 중생 모양을 하고 있으나 마음 가운데는 부처님이 계십니다.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했듯이 나를 완전히 없애 버리면 내 안에 깃들어 있는 부처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추락이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씨가 땅바닥에 떨어져 썩어야 껍질을 벗고 싹이 나옵니다.
씨가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열리듯 나를 버리는 그 자리가 바로 기회가 잉태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사상가 맥밀란은 위대한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철저한 추종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통과 쓰라림의 능선을 넘으면서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밟아 올라가 보아야 아래 사람들의 괴로운 심상을 알게 됩니다.
아래 사람들의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도 훌륭한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 길은 아주 간단합니다.
상대방의 추종자가 되고,그림자가 되고, 수족이 되어주는 겁니다.
부부가 한 덩어리가 되어 서로를 신뢰한다면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
또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 것입니다.
한 생각 바꿔 자기를 버리고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흠뻑 내어 주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비결입니다.

제가 행자 생활을 할 때 얘기입니다. 겨울이 되면 배추를 산처럼 쌓아 놓고 김장을 해야 했고,
수백 덩어리의 메주를 만들어 장을 담가야 했습니다.
그 당시 큰스님께서는 "메주 띄워 간장을 잘 담고,김장을 맛있게 잘 하면 큰스님이 된다"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나는 '이런 일이나 하려고 여기까지 힘들게 온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나를 비웃고 낮추는 이런 일이 스님 생활 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명예, 권력,재물이 최고라 여기며 의지하려고 합니다.
매사에 하나라도 더 가지려 발버둥치고,가지고 있는 것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합니다.
이처럼 현상세계에 밀착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허망한 것이니
버리라고 하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함경에서 열반이 최고의 경지라 하여 열반을 성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에서는 "열반에 들게 한 중생이 하나도 없다"고 하시면서 열반을 부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상을 버리라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주 희유한 사람입니다.
전생부터 이미 좋은 업을 많이 지어 공덕과 불연을 두루 갖춘 사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제일바라밀은 육바라밀 가운데 보시바라밀을 말합니다.
내가 남에게 베푼다는 마음조차 없이 베풀 때 상대방과의 장벽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보시가 나와 남을 하나로 만드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을 합니다.
마음에 장벽이 많아서 그것을 부수고 들어오려니까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했더라도 그 내면에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게 됩니다.
자기가 바라던 대가가 없을 때 상대방에게 원망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진정한 보시는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주고 받는다는 생각조차 없이 보시할 때 으뜸가는 바라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으뜸가는 바라밀일지라도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낼까봐 단지 그 이름을 제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욕바라밀은 생로병사를 포함한 일체의 고통과 극도로 어려운 상황을 끝까지 참아 냄으로써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합니다.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무상한 것임을 알아 일체의 상에서 떠나게 되면
참는 '나'도 성낼 '대상'도 없게 됩니다.
부처님도 인욕선인이었을 때 자신의 육신이 잘려 나갔지만 '나'라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억울함도 원망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없어지면 참는 나도 원망할 대상도 따로 있지 않기에 참는다는 생각도 없이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욕바라밀입니다.

사랑과 자비만이 미움과 원한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원한이나 화내는 마음을 억지로 참으면 몸과 마음에 병이 생깁니다.
세상에서는 복어나 독사의 독이 가장 독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화를 낼 때 몸 속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이 더 독하다고 합니다.
몸 속에 아드레날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걸리게 됩니다.
마음에 앙금이 남아 있으면 상대방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괴로운 것입니다.

보살은 일체의 상을 여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즉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색성향미촉법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물질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머문다는 것은 껍데기에 치우친 마음이고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보살은 마땅히 외부의 어떤 경계나 눈에 보이는 세계에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이라고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은 음식으로 이 몸뚱어리를 살찌우고 아름다운 옷으로 휘감는다 해도 언젠가는
임종을 맞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억만금이 있고 수만 평의 땅을 가졌다고 해도 죽을 때 그 재산을 가지고 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내 몸도 재물도 잠시 보관하고 있다가 놓아두고 가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꾸 내보낼 일만 생각해야 합니다.
보시할 때는 세 가지가 청정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주었다는 상을 내서도 안 되고, 보시 받을 사람을 가려도 안 되며,
나에게 소중한 것을 정성을 다해 주어야 참된 보시입니다.
베푸는 사람,받는 사람,베푸는 물건 모두가 없다는 청정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보시는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깨뜨리고 밖으로는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너희들은 중생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부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공부하는 사람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대해야 합니다.
부처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을 얼마나 가치있는 인간으로 승화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부처의 분신답게 갈고 닦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 되어야 상대방을 부처로 바라보게 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을 부처로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이 세상은 부처님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은 우리는 부처님의 아들딸이므로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만상은 마음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마음을 허술하게 가져서는 안 됩니다.
마음은 한 번 두 번 다지면 다질수록 그 힘이 커집니다.
그래서 백일기도도 하고 천일기도도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해서 소망하는 바를 꼭 이룬다는 확신과 믿음을 바탕으로 쉼없이 정진해 나아갈 때
엄청난 힘이 우리의 목표를 달성케 해줍니다.

부처님께서 상을 떨쳐 버리라고 하셨다가 여기에서는 그 모든 상이 본래 없다고 하시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부처님 당시 인도는 브라만교가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인간은 브라만 신의 창조물이고 신분의 차별이 엄격했던 시대에 "너희들이 바로 부처님이다"라고 하신
부처님 말씀을 사람들은 쉽게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를 납득시키기 위해 "나는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 고 거듭 말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안타까우면 이 말씀을 계속 반복하고 계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행을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해서 지금 당장 무슨 열매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하여 결코 허망한 것은 아닙니다.
세월이 흐르면 이것이 어떠한 위력을 발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삶을 살아가면 세세생생 마르지 않는 지혜의 종자가 됩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 만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가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현상과 물질에 머물러 보시하는 것은 캄캄한 방 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이 캄캄하여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실상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내 눈 앞에 다이아몬드가 아무리 많이 쌓였어도 어두우면 그 다이아몬드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받을 자리가 없는 무아의 마음을 베푸는 것은 밝은 태양 아래서 모든 색깔과 모양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빛이 밝으면 방 안에 가득 들어 있는 것이 값비싼 보석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밝은 눈, 지혜의 눈으로 비춰 보면 만나는 사람들이 다 보배입니다.
부처님 마음으로 사람들의 마음 밭에 올바른 씨를 심어 보십시오. 더 없이 소중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은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도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저 먼 미래세에 금강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수지독송하는 사람을 부처님의 지혜로 다 보고 다 아시는 것입니다.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게 되면 땅을 울리고 하늘을 울려 우주가 진동을 하게 되는 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내가 지은 공덕은 헛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지금도 우리를 다 내려다보고 다 알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에 익히고 부처님 따라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무한한 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무엇하나 찍히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계시는 위대한 카메라맨은 쉼없이 그 모두를 찍고 계십니다.
그같은 영상들이 무량한 공덕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재앙의 근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 찍어 대시면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계십니다.
항상 조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 옮김





&  우란분절 / 김무한
대덕심 [2015-06-25] : 많은 공부를 해야겠습니다.지연법우님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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