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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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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하며 사는 삶이 곧 수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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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3 09:24:58, 조회 : 1,11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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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85339_6937_920.jpg (86kb) 다운 :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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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참선이나 절입니다. 무엇 때문에 참선을 하고 절을 합니까. 붓다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삶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이라면 그것이 곧 수행입니다.
참선이나 염불이나 절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삶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실천과 활동이 바로 수행입니다. 신부님이나 목사님을 만나면 물어봅니다.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까.” 그러면 모두들 당황해 합니다.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왜’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인데 무슨 이유가 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동의 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원수를 왜 사랑해야 하는 건지 의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내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내 삶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나에게 욕했지만 나는 상냥하게 대하겠다. 저 사람이 거짓말했지만 나는 진실 되게 대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상대를 미워하는 한 내 삶의 완성도는 높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연기(緣起)법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가 인연 맺고 있으며 이어져 있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상대편이 욕을 했다고 해서 주먹을 휘두르면 더욱 큰 폭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연기법이 진리임을 안다면 우리는 상대편에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관계없이 선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삶의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붓다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명상이든 수행이든 삶과 분리돼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수행은 삶 속에서 녹아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어디 가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수행이기 때문에 수행은 우리의 삶 속에 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는 않습니다.
수행을 삶 속에서 완성하기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죽기 살기로 해야 합니다. 하고 또 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이뤄집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반드시 이뤄지기에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는 만큼 이뤄집니다. 우리가 붓다라는데 과연 그럴까. 또는 붓다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의심에 찬 마음으로는 절대 되지 않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불교라고 하면 교리공부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붓다로 살자’는 이론이나 실제적 삶을 붓다로 살자는 의미입니다. 중생이 곧 붓다입니다. 그래서 신기하고 신기한 것입니다. 잘 몰랐을 때는 업보중생이었는데 알고 보니까 신기하게도 내가 붓다였구나, 이런 감탄이 절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불자의 삶은 붓다로 살자가 답입니다. 이것이 불교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아는 것이 ‘붓다로 살자’라는 결사의 첫 관문입니다. 우리 모두 붓다라는 것을 확신하고 함께 붓다로 살기를 서원해야 합니다.
-도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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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연스님/차나 한잔 하고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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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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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로 살자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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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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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원수이기는하나 나자신보다 배울점이 있을것입니다감사합니다 법성화법우님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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